내가 언제부터 그림보기를 좋아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안방 벽에 걸려있던 제약회사 달력의 그림과 매년 봄에 있었던 국전, 그리고 아주 가끔 찾아갔던 덕수궁 미술관의 전시가 전부였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생 때에는, 방학식 날 다음 학기 교과서를 받으면 우선 국어책을 읽고, 음악책을 펴서 첫 페이지부터 끝 까지 노래를 다 불러 보았다. 이상하게도 교과서는 제 때에 읽으면 지겨운데 미리 읽으면 동화책 같았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미술교과서에도 재미를 붙였다.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실려 그랬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 내겐 인상파 작품과 가까워질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과외라고 해봐야 영어나 수학 과외 정도였지만, 그나마 중3 여름에는 과외수업이 일체 금지되어 오후 3~4시에 하교하면 학기 중에도 하루 종일 한가했다. 방학에는 더 말할 것도 없어서 참 무료한 시간을 많이도 보냈다. 심심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봤던 책 중에는 화집도 있었다. 그 화집을 누가 샀는지 모르겠는데, 마네, 모네, 고흐, 고갱과 드가/로트렉 다섯권으로 된 한국일보사에서 낸 세계미술전집중 한 세트였다.
1976년에 나온 비교적 오래된 판임에도 불구하고 활자만 좀 서툴렀지 칼라나 제본 모두 훌륭했다. 한 작가의 대표적인 그림도판이 70여개씩 담겨 있어 화가의 작품 세계를 일별하기에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해질녘이 되면, LP판을 걸어 놓고 화집을 무릎에 놓고 앉아 하염없이 그림을 보았다. '좋은 그림10선', '그저 그런 그림10선' 같은 걸 꼽아 보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그 화집을 친정에 놓고 왔는데, 몇 해 전, 불현듯 그 화집이 몹시 보고 싶어 친정 서가에서 빼왔다.
평면 예술인 그림도 미술관에서 실제 보면, 마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처럼 절절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화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채, 붓놀림의 질감, 숨어있던 물감의 양감은 물론 심지어는 작품의 크기까지도 의외의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해외 출장을 가면, 미술관 갈 생각에 가슴이 뛴다.
몇 해 전부터인가, 서울에서도 기다려지는 전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 '20세기의 전설 피카소',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짧지만 충만한 광고 카피부터 가슴 설레게 만든다. 우리 미술관에 번듯한 소장품 하나 없는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각별한 기회이다. 그런 전시가 있을 때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아이들을 이끌고 전시를 찾아 모처럼 엄마 노릇을 하고, 주중 점심시간에 혼자 와 그림을 보곤 했다. 점심 같은 건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나는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손끝에서 한번, 감상자의 눈매에서 또 한번의 창작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제는 덜 알려진 작가, 덜 인기 있는 그림을 하나라도 더 봐야 옳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블록버스터 전시는 더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감상자들에게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킬 테니 그 만큼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렸던 피카소 전시는 마지막 며칠간 24시간 전시를 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금융 위기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니 파리에서는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올해에는 이 좋은 계절, 그 좋은 정동에서, 금요일 저녁엔 미술관 로비에서 재즈가 울려 퍼지고, 잠 설치는 열대야엔 주말만이라도 미술관을 찾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척박한 세상이지만, 오로지 화폭에만은 행복을 옮겨 담은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과 함께 한 시간쯤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보는 건 어떨까?
조윤선 국회의원ㆍ한나라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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