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제임스 사이먼스는 이 시대 최고 갑부의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헤지펀드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최근 연간 개인수입 랭킹에서 세계 1위를 계속 차지했는데, 작년에만 무려 3조7,000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수학자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천-사이먼스 이론에 나오는 유명한 수학자 사이먼스와 동일인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62년 버클리에서 수학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MIT 교수를 거쳐 뉴욕 스토니브룩의 수학과 학과장을 장기간 역임하며 이 학과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으니 행정능력도 남다른 사람이다. 70년대에 그의 주도로 발견된 천-사이먼스 불변량의 개념은 지금도 미분기하학과 수리물리학의 주요 업적으로 기억되니, 연구자로서도 최상급이다.
그는 투자 방식에서 정치적인 요소 등을 고려하지 않고 수학적 방식으로 만든 모델만을 사용하며, 그의 투자회사에는 이러한 수학적 모델의 향상에 매달리고 있는 많은 수학박사들이 일한다고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파생상품과 금융수학에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통제수단의 법적 미비나 도덕적 해이가 더 큰 부분인 것 같고, 2008년 위기의 와중에도 사이먼스의 메달리온 펀드는 84%의 수익률을 내어 수학적 방법의 힘을 증명했다.
필자가 2007년 5월에 미국 버클리에 소재한 세계적인 수학연구소인 MSRI를 방문했을 때였다. MSRI의 소장을 10년간 역임하며 연구소의 명성에 크게 기여한 아이센버드 교수의 퇴임 및 환갑기념 학회 참석차였는데, 발표 순서의 마지막 날에 짐 사이먼스라는 이름과 함께 난해한 강연제목이 붙어있었다. 마침 눈에 뛴 아이센버드 소장에게 물었다. "이 사이먼스가 그 사이먼스인가?" "물론이지".
그의 강연 전날인 5월 3일 학회 참석자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사이먼스도 참석했는데, 그는 MSRI의 이사 자격으로 간단한 인사말을 하면서, 수학의 진보에 관련한 MSRI의 역할에 존경심을 표한 후 미래의 역할을 돕는 취지로 1,000만 달러를 기증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참석자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미국의 수학 관련 단일 기부로는 역대 최대인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국 수학자 세 명에게는, 기부문화가 성립되지 않은 국내 현실이, 기초과학에 대한 기부에는 더더구나 인색한 현실이 큰 대비로 다가왔다. 그에게 물었다. "수학강연은 조금 의외인데, 수학연구를 할 시간이 있긴 한 건가?" "나이가 먹으니 첫사랑인 수학에 대한 애정을 떨치기 힘들다. 이제 회사 일은 도와주는 이들이 많으니 매주 하루 이상은 수학연구를 하기로 작정했다. 뉴욕시립대의 설리반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워크샵 강연도 이에 관한 것이다".
다음 날 그의 강연은, 몇 해 전에 그의 수백만 달러 기부로 완성된 "사이먼스 강당"에서 열렸다. 그의 이름이 붙은 강당에서 그가 30년 만에 하는 수학강연을 듣기 위해 은퇴한 버클리 노교수들을 포함한 많은 청중이 운집했다. 처음 학회에서 강연하는 젊은 학자처럼 그는 흥분한 듯 보였고, 제한된 시간을 훨씬 초과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못한 그는, 학회 종료 후에 추가강연을 하겠다고 했고, 많은 청중이 인내심을 같고 그의 추가강연을 들으며 수학자로서의 그의 귀환을 환영해 주었다. 즐김의 수준에 다다른 문화적 성숙도가 참 보기 좋았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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