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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의 좌충우돌 투자일기] <8> 객장 가보기

입력
2009.06.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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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모은 돈인데 컴퓨터로 돈 넣으면 그게 뭐… 아무것도 아닌 거 같잖아."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노(老) 신사의 말이다. 그는 컴퓨터 주식매매시스템(HTS) 대신 객장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객장 투자자다. 웬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싶으면서도 소중한 돈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사뭇 감동적이다.

개인투자자의 HTS거래비중(체결량 기준)이 80%에 달하고 있지만 정작 객장에서 직접 전표를 써 가며 주식을 매매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컴퓨터에 익숙치 못한 70대이상 노인들이다. 객장 운용수수료(0.5%)가 온라인(0.15%)보다 약 3배가량 비싼데도, 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객장을 찾는 까닭이 뭘까 궁금해서 직접 물어봤다.

대답은 각양각색. "자판보다는 손으로 직접 종목, 주문수량, 주문단가를 써야 확실하지, 무조건 빠르다고 돈이 많이 벌리나", "상담해주는 직원들 눈을 직접 보고 궁금한 것도 재깍재깍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지", "집에 있으면 정신만 사납지, 여기 나와서 전광판도 보고 이렇게 사람들이랑 의견도 나눠야 주식투자가로서 체면이 서지" 등등.

듣다 보니 재미있다. 숫자 하나 쓰면서도 온 정성을 다하고 주식전광판 앞에서 주식전문가마냥 폼도 잡는다. 언론이나 증권사 보고서보다는 창구직원 말에 더 신뢰가 간다고도 했다.

좀 더 절절한 얘기도 있다. 26년차 객장 투자자는 "HTS를 이용하지만, 그건 피치 못할 때나 저녁에 장을 들여다볼 때 얘기고, HTS로 주식 하다 보니 너무 쉽게 돈을 잃고 또 다시 넣고 하다 보니 어느 새 컴퓨터에만 돈을 넣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객장에서는 신중한 투자 한번을 위해 종일을 버리지만, HTS는 성급한 투자로 돈을 몽땅 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이날 마주친 또 다른 투자자는 공모주 청약 대기자. 거래영수증을 한 가득 손에 쥔 그는 HTS로도 공모주 청약이 가능한데 객장에 나온 이유를 묻자 "돈을 뺐다가 넣었다가 또 옮기기를 수 차례 해야 하는데 한 번에 나와서 해결하는 게 낫다"고 귀띔했다.

객장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고령자. 컴퓨터에 익숙치 않은 세대지만 주식과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이들이었다. 도구가 달라진다 한들 투자에 대한 애정마저 달라질까. 오히려 객장에서 주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HTS로 줄기차게 단타를 노리는 투자자들과는 다르게 사뭇 여유롭다.

시초를 다퉈서 돈을 벌어들이기보다 증시 흐름을 노리고 기다리면서 돈을 묵혀두는 까닭이리라. 객장에서 '돈'보다는 '돈의 가치'를 쫓는 그들을 만나보니, HTS 앞에서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했던 초보투자자의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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