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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엄마들의 '교생실습'/ "엄마 나라 말 배워볼까… 따라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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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엄마들의 '교생실습'/ "엄마 나라 말 배워볼까… 따라해봐요"

입력
2009.06.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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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어서서 짝꿍과 마주 보세요. 손을 모아 턱까지 올리고 살짝 고개를 숙입니다. 남학생은 '사왓디크랍', 여학생은 '사왓디카'라고 해봐요. 잘했어요. 이게 태국 인사법인 '와이'예요."

11일 오전 서울 구로구 영림초등학교의 3학년 교실에 한국어가 유창한 태국인 교생 선생님이 등장했다. 1999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박 가비니(38)씨다.

그는 처음 강단에 선 교생답지 않은 노련한 솜씨로 학생들에게 태국 문화에 대해 두루 설명했다. 태국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밑그림을 나눠준 뒤 색을 칠하게 하고, 태국 기념품들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학년 교실에선 3년 전 한국에 가정을 꾸린 키르기즈스탄 여성 이나직(33ㆍ본명 이마나리에바 나즈굴)씨가 사진 자료를 통해 모국의 이모저모를 소개했다. 같은 반에 여자친구가 있는 이주영(12)군이 관광 명소인 이스쿨 호수 사진을 보며 "신혼여행 때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가 친구들의 짓궂은 놀림을 받았다.

"선생님 나라엔 40개 민족이 살지만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는 설명에 한 학생이 "좋게 지내고 싶어도 동네에 사는 중국동포 아저씨들이 술에 취해 싸우는 일이 많다"고 대꾸했다. 이나직씨는 당황하지 않고 "20년 뒤 이 교실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앉아있을지 상상해보자"고 제안했다.

박씨와 이나직씨는 일본, 중국, 몽골, 필리핀 등지에서 온 여성 7명과 함께 8~12일 닷새동안 이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다. 이들은 올해 초 서울교대와 서울시교육청이 공동 운영하는 '이중언어 교사' 양성 과정에 지원, 3월부터 서울교대 다문화교육연구원에서 한국어와 교수법 강의를 듣고 있다.

6개월 동안 주 5일 전일제 수업을 받아야 하는 강도 높은 과정이다. 수강생은 14개국 출신 70명(남자 1명)이며, 대부분 결혼 이민 여성이다. 한국어 구사 능력은 기본이고,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춘 고급 인력을 선발하다 보니 변호사나 의사 자격증을 가진 학생도 있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에도 실습을 잘했는지 따져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나직씨는 본국에서 2년간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했고, 박씨도 결혼 후 태국어 강사로 오래 일해서 둘 다 이미 '프로 교사'들이다.

그런데도 이나직씨는 "학생 중심으로 진행하면서 질문과 대답을 활발히 이끌어내는 한국식 수업 방식을 제대로 소화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회계학을 전공한 박씨는 "유명 사범대에도 합격했는데 교사보단 회계사가 돈을 많이 벌겠다 싶어 회계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가르치는 운명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교사들의 평가는 후하다. 이화영 교사는 "다들 고학력자라 자질이 우수하고 실습에 임하는 열의도 높다"고 말했다.

8월 말 교육이 끝나면 수료생들은 9월부터 서울시내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상대로 외국 출신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다. 4월 현재 시내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2,731명으로, 시교육청은 해당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수료생을 우선 배치할 계획이다.

이런 이중언어 교육이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학습 부진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가 많다.

원진숙 서울교대 교수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어머니 품에서 성장하면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이는 학습 부진과 사회 부적응으로 이어져 새로운 소외계층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민 2세대들이 두 개 이상 언어를 통달한다면 자신감이 커지고 진로도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영림초교 교장은 "다국적 교사들의 활동을 보면서 학생들이 차별 대신 공존을 우선시하는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비 선생님이자 다문화가정 학부모로서 박씨와 이나직씨가 이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는 좀더 구체적이다. 박씨는 "부모님이 화교라 집안에선 태국어를 못쓰게 해서 중국어도 할 줄 안다"며 "나도 아이들에게 '외가 식구들과도 대화를 할 줄 알아야지' 하면서 태국어를 가르치려 했는데 한국에선 쉽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이 대거 학령기에 접어든 만큼 학교에서 '엄마 나라 말'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살 배기 아이를 둔 이나직씨는 "아이의 한국어 습득 능력이 외국인 엄마보다 빨라 나중에 의사소통이 안될 수 있고,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은 만큼 이중언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결혼 이민 여성 중에는 고급 인력이 많은데 (이중언어 교사 같은) 안정적 직업이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만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따로 모아놓고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 사이에 또 다른 벽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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