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 등 현 정부의 국정기조 전반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국민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을 촉구했다. 그는 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나 방관은 악의 편이라고 단정하고 "수십년간 피땀 흘려 이룬 가치들을 지키는 일에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작심하고 거친 말을 쏟아낸 전후 맥락이나 진의는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민감한 시기에 국가원로가 던진 발언으로는 결코 적절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피맺힌 심정'이라고 표현한 절박한 시국인식을 이해한다 해도 발언의 내용과 파장을 좀 더 세심하게 고려했어야 옳았다.
김 전 대통령의 '6ㆍ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강연의 핵심은 전쟁의 공포에서 한반도를 해방시키려면 자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끌어낸 6ㆍ15 선언과 10ㆍ4 선언의 정신이 지켜져야 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전략 없는 강경책으로 한민족 화해번영의 틀을 무너뜨리고, 이런 냉전적 분위기에 편승한 보수 기득권 세력이 민주주의의 물꼬를 거꾸로 돌리면서 서민층의 생계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김 전 대통령의 인식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국민의 저항을 받았던 과거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기억의 창고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꺼내와 국민들의 각성과 견제를 촉구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여길 법도 하다. 이 같은 인식에 공감하는 여론도 적지 않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노여움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국가원로이자 아직도 지역ㆍ이념적 지지층이 두터운 그가 사실상 정권투쟁을 부추기는 듯한 말을 토함으로써 정국 갈등의 중심에 서고 거센 역풍을 낳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다. 그가 집착하는 북한문제만 해도 이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포용 피로감을 덜어주는 대안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민주주의의 후퇴, 빈부격차 확대 등이 우리사회의 주요 의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다양한 관점을 덮어둔 채 돌연 양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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