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황순원(1915~2000)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소년, 소녀가 풋풋한 사랑을 나누던 개울가며 징검다리, 오두막 등 배경 무대가 책 속에서 나와 한 시골 마을에 그대로 내려 앉았다. 13일 문을 여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의 '소나기 마을'이다.
'소나기'(1953년 작)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첫사랑을 그린 영화 등에 차용되면서 세월을 넘어 '국민 소설'로 사랑받고 있다. 경기도와 양평군은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소설 속 구절을 근거로 2006년부터 124억원을 들여 4만7,640㎡ 규모의 마을을 조성했다.
11일 오후 개장을 이틀 앞두고 미리 가본 '소나기 마을'은 각종 시설물의 안전 점검 및 산책길 청소와 표지판 정비 등 손님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로 분주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소녀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에게 "이 바보"라고 외치며 조약돌을 집어 던지던 개울 징검다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징검다리를 건너 광장으로 향하는 산책로에는 소년, 소녀가 참외 대신 "우적 깨물어" 먹던 무밭과 원두막이 자리를 잡고 있어 잠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다.
산책로 중간에 위치한 '목 넘이 고개'는 황순원의 다른 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따온 것. 고개를 넘자 눈 앞에 야외 공연장과 함께 '소나기 광장'이 펼쳐졌다. 광장에서는 소년, 소녀의 "목덜미가 선뜻할 정도로 굵은 빗방울"을 직접 맞을 수 있다.
30, 40분마다 한 번씩 네 귀퉁이에 자리한 분수에서 소나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광장 곳곳에는 수숫단이 세워져 있어 소설 속 소년, 소녀가 수숫단 속으로 몸을 피해 비를 긋는 장면을 재연해 볼 수 있다.
또 광장 한 편에는 소녀가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던 섶 다리 개울이 있어 바짓단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너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는 황순원 선생의 묘와 황순원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천안 풍산 공원 묘역에 있던 선생의 유해를 올해 3월 이곳으로 이장해 왔다.
문학관에서는 시골 초등학교 교실처럼 꾸민 상영관에서 '소나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그 날'(넬슨 신 감독ㆍ12분)을 상영한다. 소나기가 오는 장면에서는 실제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번개가 치며 바람도 불어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2004년 서울 환경영화제 개막작인 '소나기 그쳤나요'(장진 감독)가 수시로 상영되며 '소나기' 외에도 '독 짓는 늙은이' '학' '별' 등 황순원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오디오 북과 e-북으로 접할 수 있다. 선생이 생전에 글을 쓰던 서재도 그대로 재연해 놓았고 육필 원고 등 유품 90여점도 전시돼 있다.
소나기 마을은 곳곳에 야간 조명을 설치, 해가 저문 뒤 펼쳐지는 야경 또는 일품이다. 경기도는 소나기 마을 인근에 있는 국민 관광지 '양수리 두물머리' 등과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해 연간 5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문화 테마 마을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마을 입장은 무료.
문학관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양평군민은 무료다.
강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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