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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6> 소아암 앓는 김남열군과 어머니 이순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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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6> 소아암 앓는 김남열군과 어머니 이순자씨

입력
2009.06.12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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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기차로 꼬박 3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경북 칠곡군 왜관읍. 역사를 빠져 나오니 방금 지은 듯한 산뜻한 모습의 아파트 단지가 가지런히 늘어서 이방인을 맞는다. "한적한 논밭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아파트가 많아 의외롭다"는 반응에, 택시기사는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지어준 공공주택"이라고 설명했다.

6년 전부터 소아암을 앓아온 남열(18)군 가족도 1년 전 이 아파트로 입주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과 약간의 관리비만 내면 된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데 마침 교회를 향하던 남열이와 어머니 이순자(40)씨를 만났다. 남열이의 얼굴에서 6년 동안 암과 힘겹게 싸워온 환자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비쩍 마르긴 했지만 해맑은 얼굴에 또렷한 눈매가 인상적인 사춘기 소년의 냄새가 폴폴 났다.

남열이를 덮친 소아암은 비정상적인 세포가 체내 조직에 침투해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림프선 종양. 해마다 1,000명이 넘는 15세 이하 어린이들이 걸리는 대표적인 소아암이다. 그에게 통증이 처음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엔 어머니와 남열이 모두 대수롭지 않은 병이려니 여겼다. "목 밑 부분이 조금 부풀어 올랐고, 그 부위를 만져보니 안에 알맹이 같은 것이 느껴졌을 뿐 다른 증상은 없었어요." 그간의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남열이가 당시를 회상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자서 살짝 부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민간요법으로 얼음 찜질도 해주고 파스도 붙여줬는데, 오히려 아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 거에요. 큰일났다 싶었지요." 어머니 이씨의 설명이다.

갑작스레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는 아이를 업고 황급히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X레이를 찍더니, "별 이상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하지만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목이 점점 더 부풀어 올라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대구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아무래도 소아암 같다"며 "3주 정도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눈 앞이 캄캄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다. 억지로 정신을 수습한 이씨는 '우리 착한 아들이 암 같은 몹쓸 병에 걸렸을 리 없다'며 수없이 자신에게 되뇌었다.

3주 후면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입원 기간은 계속 길어져 일곱 달을 넘어갔다. 남열이는 항암제를 처음 투여 받은 날의 병실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니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녁에 배가 너무 고파 엄마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해서 먹고 있는데, 같은 병동에 있던 아이들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거에요. 처음에는 '왜 나를 쳐다볼까' 의아스러웠어요. 그런데 라면을 한 입 넣는 순간, 그날 먹었던 모든 것들을 밖으로 토해냈어요." 그 때서야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이들의 눈빛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한 항암제 치료의 부작용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와, 구토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남열이는 먹고 뱉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야 했다.

암 치료가 장기화하면서 남열이네 가족의 삶에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집안 일 다 팽개치고 아이 병 간호에만 매달리다 보니 남편과 조금씩 틈이 벌어졌어요. 남편 벌이도 시원치 않았고, 시댁에서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비난 일색이었고요. 결국 이혼을 결심했죠. 이후 정부에서 주는 월 60만원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다 보니 빚은 조금씩 늘어났고, 집 한 칸마저 내주고 사회복지시설에서 기거한 적도 있어요."

항암제의 줄기찬 공격에도 불구하고 암은 1년을 주기로 재발했다. 수천 만원의 치료비가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이씨와 남열이는 꿋꿋이 견뎠다.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가 '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거냐'며 원망하는 모습에,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했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대신 아플 수 없다면 아이에게 웃음이라도 듬뿍 주자고 다짐했어요.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짓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엄마의 정성이 남열이에게 전해진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아들이 진중한 자세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른스러워졌다는 느낌이 든 것도 이 무렵이다. "엄마가 저보다 더 힘들었을 거에요. 3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을 내 집 드나들듯이 오가다 보면 지칠 법도 한데, 엄마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의사선생님 전화가 오면 부엌에서 몰래 우시고도, 제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열아 전쟁 났다. 짐 싸서 서울 가자'라며 신나게 얘기하세요. 제가 힘을 낼 수밖에요."

종일 갑갑한 병실에 갇혀 지긋지긋한 항암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남열이와 다른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엄마의 웃음소리는 희망의 선물이었다. "늦은 밤 병실 안 아이들이 축 쳐져 쓰??있을 때 엄마가 개그 프로를 틀어놓고 까르르 웃으며 배를 부여잡으면 아이들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어요."

남열이는 자신의 삶을 낚시에 비유했다. "마치 제가 물고기인데 누군가 계속 미끼를 던져줘서 목숨을 이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날 때마다 건강을 염려해주시는 학교 선생님과 이웃집 할머니,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두 제 미끼에요. 그 중에서도 엄마는 좀 덩치 큰 미끼죠. 이 미끼를 물면 죽는 게 아니라 몸이 살찌고 건강해져요. 하느님이 저를 살리기 위해 이 미끼들을 보내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치료비 걱정으로 날밤을 지새웠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굿모닝신한증권이 매달 꼬박꼬박 30만원씩 지원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이씨는 식당 일도 틈틈이 시작했다.

남열이도 꿈을 키웠다. 지난해 1년 만에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했다. "아플 때는 '현재'가 너무 중요했고 당장 몸이 아프니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요. 뭘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어 게임중독에 걸린 적도 있었죠." 하지만 건강이 회복되자 자신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은혜를 갚으며 살아갈 것"이라며 "대학에 진학한 뒤 어떻게 남을 도우며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건강하게 살기만 간절히 바랬는데, 어느 새 든든한 아들로 컸네요. 남열아, 너 잘 되면 나도 좀 보태줘." 이씨 모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 굿모닝신한증권의 사회공헌 활동

굿모닝신한증권의 사회공헌 활동은 문화예술 및 소외계층 지원, 미래세대 육성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런 만큼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일상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체질화해있다고 보면 된다. 사회공헌은 기업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이휴원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평소 "기업 본연의 임무 외에 고객에게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이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또한 기업의 의무"라고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굿모닝신한증권은 세 가지 비전을 세운 뒤 이에 발맞춰 체계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첫 번째 비전은 문화예술활동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 이를 위해 회사 1층 로비 및 옥외공간을 문화예술작품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또 2006년부터 일반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구족(口足)화가 작품 전시회를 돕고 있다.

두 번째는 소외계층 지원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 한국복지재단과 연계해 결식아동 돕기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2006년에만 1만3,886개의 도시락(약 3,000만원 상당)을 결식아동에게 전달했다. 아울러 한국소아암재단과 함께 직원급여 중 매달 1만원 미만의 자투리 돈을 모아 소아암 환자들의 치료비 및 가족 생계비로 지원하고 있다. 2006년부터 매달 5명의 어린이에게 소아암 치료비 30만원씩을 지원, 그간 총 지원금액이 5,000만원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세대 육성을 통한 차세대 리더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증권회사의 특성을 살려 '어린이 경제교육', '대학생 경제 아카데미' 등 다양한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밖에 '사랑의 연탄 나누기', '사랑의 쌀 나누기', '태안지역 기름띠 방제작업' 등 폭 넓은 봉사활동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회봉사 동아리 '新사랑'의 이창훈 팀장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관=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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