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언론이라고 한다. 한국일보 창간 55주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언론 40.3%, 노 전 대통령 자신과 가족 38.2%, 이명박 대통령 36.6%로 책임 정도를 평가했다. 한 가지만 꼽을 때는 본인과 가족, 이 대통령, 언론 순이었으나 2개 복수응답에서는 근소한 차이지만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책임은
언론의 무차별 보도와 왜곡ㆍ오보가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맞물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수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응답(64%)이 이런 인식의 바탕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조사에는 반영돼 있지 않지만, 언론에 대한 불만은 수사보도에 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에는 그렇게 못 살게 하고 온갖 추문을 들춰내다가 서거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웅처럼 미화하고 떠받들고 추모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도 크다. 언론에 대한 반감, 언론인에 대한 환멸을 표시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사실, 언론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돌아봐도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큰 사건이 벌어지면 피의자나 관련자들의 명예와 인권은 흔히 속보와 특종경쟁에 묻히게 된다. 보도와 논평의 파장을 깊이 생각하는 역량과 여유가 없다. 보도 방식과 방향에는 언론사마다 그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어 남들이 뭐라고 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특종과 속보 경쟁을 말릴 수는 없다. 1억원 짜리 시계의 경우,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망신스러운 일이었지만 누군가 일부러 이 사실을 흘렸다면 그 말을 듣고도 쓰지 않을 수 있는 언론이 있을까? 그가 시계를 본 적도 없다는 것은 사후에 정설로 굳어진 것이지 보도 당시에 시계는 특종일 뿐이었다. 정보를 가진 사람들의 장난이나 유혹에 언론이 놀아나지 않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미확인 보도나 부주의로 인한 오보다. 최근 어느 신문이 임채진 전 검찰총장을 전화로 인터뷰한 뒤 "(검찰 수사를) 표적수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신문을 보면 그가 한 말은 "검찰이 표적수사를 했다면 내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첫 보도가 나간 뒤 검찰은 해명자료까지 냈지만, 이미 그의 말은 인터넷에서 비아냥 욕설과 함께 뭇매를 맞았다. 말썽과 비난이 두려워 그가 말을 바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실 오보 예방보다 더 어려운 것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며 정론을 세우고 지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언론이 갈등의 해소ㆍ통합에 기여하기보다 스스로 갈등 생산ㆍ증폭 장치나 정파가 돼버린 상황에서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일에 대해서든 A신문은 늘 a라고 하고, C신문은 항상 c를 주장한다. 볼 것도 없다.
신문의 경우 경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새로운 디지털환경과 영상매체에 밀려 영향력이 떨어지고 무가지 범람으로 스스로 권위를 잃어 정론직필의 힘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외부적 환경과 언론계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언론 전체의 신뢰 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최근의 중요한 변화는 같은 언론사 내에서도 상하, 선후배 간 의식의 괴리와 편차가 큰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노 전 대통령과 현 시국에 대한 판단이 매우 다르다. 선배들은 5ㆍ18항쟁이나 6ㆍ10항쟁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고 말하지만, 젊은 기자들은 민주와 독재의 구도는 달라진 게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시각도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정론을 세우고 지키는 과제
이렇게 안팎으로 얽히고설킨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고, 사회 발전과 통합에 기여하는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냉정과 객관의 눈을 잃지 말고 각자 맡은 바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원론만 되풀이 강조하면 그만인가? 회사의 입장을 넘어선 정론이란 대체 무엇인가? 노 전 대통령은 여전히 사람을 괴롭게 하고 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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