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력이 영국 등 유럽에 크게 뒤져 있던 19세기 전반만 해도 미국엔 내로라 할 경제학자가 없었다. 그 뒤 미국 경제는 남북전쟁 이후 풍부한 자원과 넓은 시장을 기반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20세기 초 영국을 추월하는데 이즈음 존 베이츠 클라크(1847~1938)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한다. 독일 등 유럽에서 공부한 그는 제도학파와 마르크시즘의 영향도 적잖이 받았지만 19세기 말 컬럼비아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이후 이른바 '한계혁명'에 기반한 신고전파 소득분배론을 체계화한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 마르크시스트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본의 노동착취를 정당화한 속물이다. 자본가는 기계나 도구 등의 생산설비와 똑같이 노동력도 시장에서 돈으로 사고 총수입에서 이들 비용을 제한 나머지를 자본투자에 대한 이자로 모두 가져간다. 이 액수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같은 그의 분배이론을 둘러싸고 1950년대 영미 경제학계가 벌인 '자본논쟁'은 지금도 유명하다. 그는 '경제학 사상과 지식에 명백한 기여를 했다고 인정되는 40세 미만의 미국 경제학자'에게 미국 경제학회가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로 더 유명해졌다.
▦ 1947년부터 격년제로 시상되고 있는 이 메달의 첫 수상자는 경제원론 교과서로 유명한 폴 사무엘슨이다. 메달의 권위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 출신의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맡은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괴짜경제학'으로 유명한 스티브 레빗 시카고대 교수,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역대 수상자의 면면으로 입증된다. 2007년엔 첫 여성 수상자(수전 애티 하버드대 교수)도 나왔다.
▦ 역대 수상자 30명중 12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노벨상 티킷'으로 불리는 이 메달의 올해 수상자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에마뉘엘 사에즈 교수(36)가 얼마 전 선정됐다. 백만장자들의 납세자료를 이용해 미국 내 부와 소득의 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공로 덕분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 소득은 부시행정부 시절 연 평균 11%씩 늘었으나 나머지 99%의 소득 증가율은 연 1%에도 못 미쳤다. 미국의 빈부격차가 1920년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경제성장과 함께 빈곤층이 더욱 늘어나는 수수께끼의 해답이 비극적으로 제시된 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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