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름다운 가게' 7년 만에 100호점 오픈/ '나눔 바이러스 상점' 100번째 개업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7년 만에 100호점 오픈/ '나눔 바이러스 상점' 100번째 개업식

입력
2009.06.12 05:50
0 0

"아유, 한국에서 누가 남이 쓰던 물건을 사가겠습니까. 재활용품을 팔아 수익을 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2002년 초 박원순 변호사가 건넨 사업계획서를 본 기업 CEO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그만 둘 그가 아니었다. 미국 구세군, 세계적 구호단체인 옥스팜을 방문해 재활용품 수거ㆍ분류, 매장관리 방법 등 선진 시스템을 배웠다.

그 해 10월17일 '재활용품 기부를 통한 나눔 문화의 확산과 환경보호'를 내세운 아름다운가게 1호점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열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기부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나눔의 바이러스'를 퍼뜨린 아름다운가게가 12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100호점을 낸다.

■ 아름다운 기록들

기증물품 총 3,108만점, 기증물품 매출액 502억원, 소외계층 현금 지원 100억원, 현물 지원 15만여 점, 환경개선 효과 연 200억원…. 아름다운가게가 지난 7년 간 이룬 성과다. 설립 첫 해 10만점이던 기증물품 수는 지난해 788만점으로 크게 늘었다.

가게 측은 100호점을 연 올해 1,000만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게 매출액도 2002년 1억원에서 지난해 124억으로 늘었다. 재활용품 판매 수익의 수혜자도 개인 4,928명, 단체 291곳에 이른다.

국내에선 생소하던 벼룩시장의 활성화 뒤에도 아름다운가게가 있었다. 2004년부터 주말마다 뚝섬에서 열고 있는 나눔장터에는 외국인 관광객 등 133만명이 찾았고, 판매액 일부를 모은 기부금도 1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2007년엔 국내 최초로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 받았다.

아름다운 나눔의 미학은 국경도 넘었다. 제3세계 생산자들이 제값을 받고 물건을 팔 수 있게끔 국내 최초로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해로 고통 받는 동남아국가를 돕는 '나마스떼(안녕) 갠지스' 사업 등에도 나섰다.

■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가게의 성공을 일군 일등공신은 '나눔의 가치'를 아는 기증자들이다. 광주 사는 손정숙(48ㆍ여)씨는 121차례나 기증을 했다. 그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왜 여윳돈 생길 때마다 기부를 했는지,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김광민 아름다운가게 간사는 "양복을 소포로 보내면서 '드라이크리닝 못해 미안하다'며 1만원을 동봉한 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정도 밑거름이 됐다. 이들은 매주 1일 4시간 이상 매장 관리 및 운영, 행사 지원, 물품 분류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설립 첫 해 300명이던 자원봉사자 수도 5,638명으로 늘었다.

외국인들도 아름다운가게의 역사에 동참했다. 서울대에서 강릉단오제 등 한국민속축제를 다룬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독일인 얀 디륵스(34)씨는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행사가 있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봉사를 한다.

디륵스씨는 "독일에서 35년 걸린 공정무역을 한국인들은 7년 만에 해냈다"며 "서로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한국 전통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독일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그의 동생 렌트코씨는 지난해 아름다운가게 안국점에서 자선음악회를 갖기도 했다. 1년 가량 자원봉사 중인 중국 유학생 완밍펑(25ㆍ여)씨는 "중국판 아름다운가게가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다 숨진 고 이정숙씨 유족은 "어머니께서 생전에 가게 봉사 후 '나도 아직 젊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면서 고인의 유품과 '이정숙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1,004만원을 기증했다.

이밖에 최장 시간(4,800시간) 봉사기록을 가진 우명옥(72ㆍ여)씨, 손쉽게 봉사점수를 채우는 또래들과 달리 매주 4시간씩 봉사를 하고 있는 쌍둥이 중학생 우상욱ㆍ상훈(14)군, 가족 4명이 모두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유철규(49)씨 가족도 오늘의 아름다운가게를 만든 이들이다. 매장을 공짜로 내준 건물주들도 빠질 수 없는 공신들이다.

■ 아름다운 미래

아름다운가게는 물품 기증이 주를 이루던 기부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철수 화백은 판화를, 도종환 시인은 시를, 환경미술가 윤호섭 국민대 교수는 손수 그린 친환경 티셔츠를 기부했다. 100호점 역시 지난달 1일 지휘자 정명훈씨와 서울시향의 재능 기부로 열린 '아름다운 자선음악회'에 참석한 2,700여명의 티켓 판매금으로 마련됐다.

매장 매출액이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아름다운가게는 정파성이 강한 여느 시민단체들과 달리 정부 보조금 삭감에도 흔들리지 않아 한국 시민단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안국점 초대점장 출신인 이혜옥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는 "앞으로 다양한 공익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한 모금 운동도 확대해 한국사회의 선순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