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듯 자유·젊음 폭발한 추억… 기다림도 미칠지경
금요일인 5일 오후 7시 서울 홍대 인근의 카페. 한 모임이 열렸다. 금요일 밤 홍대 부근에서 열리는 모임이란 대개 단순한 여흥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마련. 하지만 이 자리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각자 한 손에 음료를 든 20여명의 참석자들의 수다는 한 가지 주제로 귀결됐다. 지금이 아닌 한 달 후 또는 두 달 후 찾게 될 '그곳'에서 재미있게 놀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놀자고 모인 자리가 잘 노는 법을 연구하는 진지한 논의의 장이 된 셈이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국내 대표적인 록 페스티벌 관련 모임 '페스티벌 제너레이션'(festivalgeneration.com) 멤버들은 1년 중 지금이 가장 활력이 넘칠 때라고 했다. 학수고대하던 국내외 록 페스티벌이 하나 둘씩 개막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뜸했던 모임도 최근 부쩍 잦아졌다.
이제 막 여름휴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6월이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지난 겨울부터 여름휴가 일정에 맞춰 해외 록 페스티벌 원정 스케줄을 짜놓은 상태. 따라서 기존 회원과 신입 회원의 상견례 자리인 이날 모임에서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해외 각 도시의 날씨 체크 등 구체적인 준비 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과연 록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들은 반년 전부터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일까. 페스티벌 마니아들에게서 록 페스티벌의 추억, 그리고 그들이 록 페스티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봤다.
● 삶을 바꿔버린 록 페스티벌
잔잔한 일상에 록 페스티벌이 끼어들면서 평범했던 이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의 단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지숙(38)씨는 올해로 페스티벌 참관 10주년이 됐다. 1999년 친구를 따라 엉겁결에 해외 록 페스티벌을 찾았던 그는 그곳에서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처음 간 곳이 하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음악이 나를 찾아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꿈만 같았어요. 아침 저녁으로 너무 추워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빠져든 록 페스티벌. 해외 각국의 페스티벌을 섭렵한 것은 물론 글래스턴베리만 벌써 6번이나 경험한 김씨는 올해도 그곳을 찾을 예정이다. 공연기획 일을 그만두고 아예 '록 페스티벌 전도사'로 나선 그는 모임 멤버들과 함께 페스티벌 정보를 모은 책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을 썼다. 페스티벌>
해외 페스티벌 참가 3년차라는 호텔 요리사 송은지(26)씨는 매년 겨울이면 '휴가 안 가고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다. "호텔 직원은 비수기인 1월에 보통 휴가를 많이 써요. 하지만 저는 휴가 기간을 아껴둬야 여름에 열리는 페스티벌을 참관할 수 있으니까 겨울에 휴가를 안 가고 버티죠. 어유, 눈치 되게 보여요."
누가 증시 상황을 고려해 재테크를 한다고 했던가. 이들에게 재테크는 페스티벌 전과 후로만 나뉠 뿐이다. 유명 록 페스티벌의 대다수가 유럽에 몰려 있는 만큼 참관 비용은 비행기 티켓과 숙박비용만 감안해도 최소 100만~150만원은 든다.
특히 전세계 록 마니아들이 관심을 갖는 유명 페스티벌은 일찌감치 티켓이 매진되기 때문에, 축제 6개월 전부터 적금을 들거나 아르바이트에 매달리게 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프리랜서인 최선희(24)씨는 페스티벌 시즌이 돌아오면 업무량을 3배 이상 늘린다. "일주일에 4시간 정도씩 클럽 DJ로 활동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페스티벌 시즌을 앞둔 때에는 하루 걸러 밤을 새워 일해요."
대학생 김한(25)씨는 기말시험을 앞두고 막노동 현장에 뛰어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영국에는 가야겠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죠. 막노동이 가장 빨리 돈을 모으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2주 동안 6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다행히 교수님께 잘보인 덕분인지 학점도 4.0으로 괜찮았답니다, 하하."
● 물티슈로 4박5일, 그래도 못 말린다
그렇게 어렵게 준비해 떠난 록 페스티벌 현장에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더러움과의 한판 승부다.
일부 도심형 행사의 경우 호텔이나 민박이 가능하지만 상당수의 록 페스티벌은 캠핑이 필수조건이다. 샤워는커녕 머리 한 번 감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들이 꼽는 최고의 필수품은 물티슈. 20대 여성이 물티슈 하나로 4박 5일을 난다고 해도 이들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다. 샤워 시설이 마련돼 있어도 남녀 구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세면대에서 온몸을 씻는 서양 여성의 모습도 페스티벌 현장에서 종종 목격하는 풍경이다. 수만 명이 일시에 몰리는 야외 공연장 간이화장실의 위생 수준은 한국의 재래식 화장실보다 못하다.
그래도 김민정(22)씨는 "몸은 고되지만 현장의 그 짜릿한 느낌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샤워 못하고 화장실이 더러워 용변 욕구를 참는 일이 허다하다 보니 순간순간엔 짜증이 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지나고 나면 이렇게 추억담으로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는 걸." 생리 문제를 함께 겪다 보니 페스티벌 동지끼리 돈독한 정이 쌓이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 록의 자유, 허락된 일탈
마니아들은 "록 페스티벌은 1년의 희망이자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사랑하는 음악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허락된 일탈이 가능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말수 적던 직장인도 최고의 '귀차니스트'인 대학생도, 히피가 되고 좀비가 된다. 김지숙씨는 "페스티벌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할로윈데이에나 어울릴 법한 이상한 소품을 모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서울에서는 결코 시도하지 않을 이상한 안경과 머리띠를 자연스럽게 쓰게 돼요. 파티 드레스를 입고 공연장에 나타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죠. 이런 독특한 차림으로 사진을 찍으면 당시 현장의 기억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돼요. 뭔가 제대로 논 듯한 느낌도 들고."
물론 그렇게 현실을 잊고 페스티벌 빌리지에서 보내는 3~4일의 시간이 지나면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이전과 변함없는 업무에 임하면서도 괜스레 축 처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당연히 그 탈출구는 다음해 페스티벌 원정 준비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더 좋은 음악을 꿈꾸면서 일상의 활기를 찾는다.
"새로운 뮤지션과 사람들을 만나는 페스티벌을 즐기는 과정을 통해 창조적 인간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증권사 리서치 어시스턴트(RA)로 일하는 박효비(25)씨는 말했다.
중독된 것처럼 록 페스티벌에 빠져들었다는 이들의 생활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독특하게 비쳐질 만하다. 하지만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홈페이지 운영자인 안희원(29)씨는 "우리에게는 록 페스티벌을 모르는 이들의 삶이 오히려 낯설다"고 말한다.
"함께 쓴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을 출간했을 때 인터넷 포털에서 댓글 달기 이벤트를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네티즌이 페스티벌이라는 말에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같은 것들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페스티벌>
제 머릿속에는 '페스티벌=음악 페스티벌'이라는 등식만 들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세상엔 참 다양한 축제가 있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정말 문화충격이었는 걸요."
김소연기자
■ 내취향 맞는 록 페스티벌은
1년의 스트레스를 록 페스티벌의 희망으로 이겨낸다는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도 한번 나서 봐?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페스티벌고어(Festivalgoerㆍ축제에 참가하는 사람)가 될 수 있는 걸까.
일단 자신의 성향 파악이 우선이다. 호기심 때문에, 또는 친구 따라 해외 페스티벌을 처음 경험한 후 페스티벌에 빠져든 경우도 있다지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
관광을 겸해 록 페스티벌을 한번 체험해 보고 싶은 경우라면 일본의 서머소닉 페스티벌, 영국의 와이어리스 페스티벌로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한국에서 가까워 주말 휴일을 활용해 찾아 볼 만한 서머소닉은 일본 지바현 마린 스타디움과 오사카 마이시마 아레나에서 이틀 동안 열리는 도심형 축제다.
고된 캠핑이 아닌 우아한 호텔 숙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와이어리스 페스티벌 역시 런던 한복판 하이드파크에서 열린다. 프로그램 구성도 대중적인 편이어서 유럽 배낭여행 계획이 있다면 일정 중 한 코스로 포함시켜 봄직하다.
모험을 즐기고 록의 자유를 제대로 즐겨 보고 싶은 이라면 역동적인 분위기의 레딩&리즈 페스티벌에 참가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같은 뮤지션들이 레딩과 리즈 지역에서 엇갈려 무대를 꾸미는 2개의 페스티벌은 각 지역 사회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역동적인 분위기로 관객 성향도 꽤 과격한 편이다.
사흘간 머리를 안 감는 것쯤은 물론이고 지저분한 이동 화장실도 거뜬히 참아낼 막강 비위의 소유자라면 꿈의 페스티벌로 불리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록 외에도 댄스, 월드뮤직 등 온갖 종류의 대중 공연을 섭렵할 수 있는 글래스턴베리는 관객뿐 아니라 밴드에게도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외진 글래스턴베리 지역의 워디 팜에서 열리다 보니 숙소를 따로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대부분의 관객이 캠핑을 해야 한다. 더욱이 2007년에 17만 7,000여명, 2008년엔 13만 4,000여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행사여서 캠핑 환경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일반적인 해외여행이 그렇듯 비용 문제는 미리 계획을 세워 일찌감치 저가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술과 음식, 기념품 구입 등에 쓸 예산은 너무 작게 잡지 않는 게 좋다. 음악뿐 아니라 페스티벌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 하나하나가 록 페스티벌에서 얻는 소중한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김소연기자
■ 록 페스티벌 이렇게 즐겨라
록 페스티벌은 가만히 앉아서 손뼉이나 툭툭 치며 음악을 듣는 '관람객'에겐 가시방석이다.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뮤지션의 음악 속으로 들어가 옆 사람과 흥을 즐기며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참가자'가 되어야 속이 편한 놀이터다. 그래서 록 페스티벌에선 모든 것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 같은 팔찌를 차고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을 돌봐주는 제도나 법령은 물론 그 흔해빠진 가이드도 없다고 생각하라. 저항과 자유의 정신이 가득한 록의 현장에 그런 투박한 게 있다면 재미없지 않을까.
그래도 이것만은 챙겨서 가자. 페스티벌을 직접 만든 이들이 귀띔해주는 '본전 뽑는, 페스티벌 즐기기 비법'이다.
● 준비물 잘 챙겨야 '우등생'
한국 팬들에게 록 페스티벌은 어느덧 우중 행사로 각인됐다. 공교롭게도 페스티벌 기간이 매년 장마철과 겹쳤기 때문. 우비와 장화는 이제 페스티벌에 가려는 사람들에겐 필수품이다. 잠깐! 그렇다고 우산을 챙겨가면 안 된다. 록의 함성으로 들썩이는 스탠딩 공연장에서 앞뒤 사람 찔러가며 우산을 흔들 수는 없으니까.
비에 단련된 한국의 록 마니아들을 괴롭히는 건 오히려 작열하는 태양이다. 2007년 펜타포트 페스티벌. 그늘막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3일간 몸을 흔들어대느라 고생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이 목소리 높여 외치는 필수 준비물 _ 자외선 차단제와 선글래스, 모자.
캠핑장이나 민박집에서 사흘간 먹고 자고 씻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갈아입을 가벼운 옷가지와 세면도구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밖에 모기약과 밤 시간대 입을 긴소매 옷 등도 가져가는 게 좋다.
취사는 안되므로 식사는 행사장 내 푸드코트를 이용하되 가벼운 과일이나 스낵류는 미리 준비해가도 된다. 탈수되지 않도록 마실 물도 충분히 챙기자. 기타를 가져가 캠핑장의 뮤지션이 되는 것도 도전해볼 만한 일.
● 나도 주인공, 개성을 뽐낼 것
어제나 그제나 늘 입는 평범한 옷차림으로 페스티벌에 갔다간 후회할지도 모른다.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ㆍ만화나 컴퓨터게임 속 인물처럼 분장하는 놀이)를 방불케 하는 튀는 옷차림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간호사 복장을 하고 오는 사람, 부처 얼굴이나 말머리 가면을 쓰고 오는 사람, 파란색 토끼 인형이나 해골 인형을 장대에 꽂아 들고 오는 사람, 각종 아이콘을 담은 깃발을 만들어 펄럭이는 사람들이 공연장을 또 하나의 볼거리로 만든다.
단 깃발이나 인형 등의 소품은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너무 크게 만들지 않는 것이 예의다. 3일 내내 들고 흔들어야 하므로 가볍게 만들어야 힘들지 않다.
● 다 보겠다는 욕심은 금물
평소 보기 힘든 뮤지션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게 페스티벌의 매력이지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단 이도 저도 안 되기 십상이다. 주최측이 무대마다 공연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짜긴 하지만, 10~20분 정도는 불가피하게 포개지기도 한다.
빠짐없이 보겠다며 두 무대를 왔다 갔다 하다가는 고생만 하기 쉬우므로 꼭 봐야 하는 뮤지션을 엄선한 후 스케줄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록 페스티벌은 함께 즐기는 관객들도 하나의 볼거리이므로 앞줄 관람을 위해 온종일 줄만 서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 미리미리 예습을
록 페스티벌 같은 관객참여형 공연에선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가 공연을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한국은 '백창'(back 唱)이라는 따라부르기 문화를 확립, 외국 밴드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관객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터. 잘 알지 못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그들의 음악을 미리 찾아 듣고 가사 공부를 해 가는 게 좋다.
옐로우나인의 홍희정 과장은 "록 페스티벌엔 유명 밴드뿐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재목들도 많이 참가한다"며 "모르는 밴드라고 해서 '듣보잡'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미리 공부해 음악 향유의 폭을 넓혀보라"고 조언했다.
● 적절한 체력 안배는 필수
록 페스티벌의 공연은 정오를 전후해 시작, 자정 무렵 끝이 나고, 자정부터 새벽 5시께까지는 DJ들이 진행하는 댄스파티가 열린다. 취침시간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엄청난 체력 소모가 불가피하다.
초심자들에겐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지는 정규 프로그램이 최대의 관심사겠지만, 상급자들은 여느 클럽을 방불케 하는 늦은 밤의 DJ 세션을 록 페스티벌의 백미로 꼽는다. 공연장에서 너무 진을 뺐다가는 이 황금시간을 제대로 즐기기 어려우므로 중간중간 적당히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비축해두자.
●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연대를
사흘간 한 공간에서 끼와 열정을 분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록의 동지들과 연대하게 된다. 함께 놀고, 함께 고생하?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는 특별한 시공간. 혼자만 최고로 즐기겠다는 욕심 대신 열린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다 보면 소통과 연대의 즐거움을 덤으로 얻게 된다.
펜타포트를 준비 중인 아이예스컴의 윤한나 대리는 "어떤 뮤지션이 나오는지 하는 라인업도 중요하지만, 캠핑존에서의 만남과 교류가 훨씬 즐거웠다는 관객들이 많다"며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가 록 페스티벌의 문화로 정착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 열정의 록과 뜨거운 여름 주체할 수 없는 '열기속으로'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록은 비중이 크지 않았다. '산울림', '부활', '시나위' 등 록그룹이 잠시 인기를 얻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댄스와 발라드로 대표되는 팝음악과 흑인음악이 가요계를 휩쓸면서 록은 침침한 빛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던 록이 지금은 총아가 됐다. 홍대 앞 인디 무대를 이끄는 실력파 루키들이 록과 포크를 주 전공으로 선택한 지는 한참 됐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대중가수들은 너나없이 포크 록과 브리티시 록 스타일의 곡을 들고 나온다. 어찌 된 일일까. 경제 불황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다. 음반이나 공연 표를 사는 사람이 구매력이 있는 20대 후반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이 연령층이 호감을 갖는 록, 포크, 컨트리 등 백인음악이 덩달아 상승세를 탔기 때문이다.
여름, 뜨거운 태양, 시원하게 퍼붓는 소나기, 그리고 청춘의 함성. 록 페스티벌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척박한 이 땅에 록 페스티벌의 뿌리를 내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4회째를 맞는 데 더해 경기 이천시 지산리조트에 둥지를 마련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09'가 처음 열린다. 기간은 두 페스티벌 모두 7월 24~26일. 록 마니아들이 고민에 빠졌다. 아, 어디로 갈 것인가.
펜타포트의 공동 주관사였던 옐로우나인이 독립해 도전적으로 첫 선을 보이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화려한 라인업이 빛난다. 설명이 필요 없는 영국의 국민밴드 '오아시스'를 필두로 미국 얼터너티브, 펑크 팝의 아이콘 '위저', 영국 일렉트로닉 음악을 대표하는 '베이스먼트 잭스' 등이 무대를 빛낸다.
'폴 아웃 보이', '지미 잇 월드', '스타세일러', '패티 스미스', '프리실라 안',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더 에어본 톡식 이벤트' 등 내로라하는 외국 뮤지션들과 '크래쉬',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요조', '이한철', '보드카 레인' 등 현재 한국의 록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다.
산중 스키 리조트의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쾌적한 환경도 지산 페스티벌의 장점. 우드록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의 록 축제를 본따 녹음이 우거진 수풀 속에 무대와 캠핑장을 마련했다. 1일권 8만8,000원, 2일권 13만2,000원, 3일권 16만5,000원. 문의 (02)3444-9969
지산 페스티벌의 도전으로 위기에 빠졌던 인천 펜타포트는 록 페스티벌의 적자라는 전통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한다. 매년 8만8,000원에 판매되던 1일권은 3만3,000원에, 16만5,000원이던 3일권은 5만5,00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2일권은 판매하지 않는다.
라인업은 지산에 비해 다소 약한 편. 하드코어 랩 메탈을 선도하는 미국의 '데프톤스'와 호주 최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에스키모 조'가 처음으로 내한하며, CF 배경음악을 통해 국내에서 유명해진 호주의 여성 뮤지션 '렌카'도 공연을 펼친다. 국내 뮤지션으로는 '노브레인', '검정치마', '서울전자음악단', '소규모아카시아밴드', '허클베리핀' 등이 참여한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이란 무릇 퍼붓는 비를 맞으며 진흙에 온몸을 뒹굴려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록 마니아들에게는 인천 송도의 9만평 흙밭에서 열리는 펜타포트의 전통과 추억이 저버릴 수 없는 매력이 될 수 있다. 록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뮤지션뿐 아니라 록의 열정으로 무장한 관객들이기도 하니까.
박선영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