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승무원인 동생이 신종플루 의심 환자를 태우고 귀국하면서 집안은 돌연 비상사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음성인지 양성인지 판가름나는 열 시간 뒤라야 동생과 접촉한 어머니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의 방역체계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 시간이면 승객들이 전국으로 흩어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몇 배수나 되는 사람들과 스쳤을 시간이다.
별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아이 손을 꼭 쥐고 걷는데 문득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쥐던 감촉이 떠오른다. 지방으로 떠나는 아버지 배웅길이었다. 아버지가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터미널 바닥에 대자로 뻗어 바둥거리며 울어댔다. 창피스러웠는지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그대로 나를 안고 버스에 올랐다. 볼품없이 썰렁하기만 하던 출판사의 지방 영업소. 경리 언니가 감자를 삶았다. 양은냄비 뚜껑 들썩이며 감자 비린내가 가득 고였다.
아버지의 월세방은 바닷가 방파제 바로 아래였다. 바다보다도 낮아 어린 마음에도 바닷물이 방으로 밀려드는 불안감에 새벽마다 깨곤 했다. 아이는 불과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사무실을 뒤집어놓고 과자 부스러기를 몸에 잔뜩 묻힌 채 사무실 한쪽에서 잠이 들었다. 점심 때쯤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그 손님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