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관가에 때 아닌 닌텐도 바람이 불었다. 대통령이 지식경제부를 방문하여 '왜 우리는 닌텐도 게임기 같은 제품을 만들지 못하느냐'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수출이 연초부터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나타내고 단기간 내 회복될 가망성이 보이지 않자 새로운 경제성장의 인자를 찾다가 나온 말일 것으로 짐작한다.
콘텐츠 '융합'에 긴요한 질서
닌텐도의 성공 비밀은 한마디로 융합에 있다. 모두가 화려한 그래픽과 복잡한 방식의 게임을 추구할 때, 닌텐도 사는 5세부터 95세까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간편한 게임기를 만들었다. 한물 간 소형액정에 간편한 게임방식은 부분적으로만 보면 경쟁사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처지는 2류에 그쳤지만, 합쳐놓고 보니 세계 최고가 된 것이다.
미주 시장에서 휴대폰 판매 1, 2위는 모두 우리나라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기업을 따라잡으려고 일본과 대만의 몇 개 회사가 합병하기로 하였다는 뉴스도 있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에 상응하는 국제e스포츠조직위원회(IeSF)는 서울에 있다. 온라인게임, e스포츠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셈이다. 게다가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들었다 놓았던 한류는 우리 문화 콘텐츠의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재료는 충분하다. 문제는 융합에 있다.
이미 지난 달 문화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진흥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으로 흩어져 있던 콘텐츠 관련부서가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폐합되어 새롭게 출범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저작권위원회와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의 통합 작업도 조만간 마무리될 예정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콘텐츠 진흥업무와 저작권보호 업무가 합쳐지고, 여기에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기술이 더해지면 우리도 닌텐도를 능가할 제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융합의 장점은 OSMU(one source multi uses)에서 발휘될 수 있다. 하나의 좋은 창작물을 여러 곳에 활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이 말은 콘텐츠 유통산업에서는 누구나 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OSMU는 우리말로 하면 '우려먹기'에 다름 아니다. 질리도록 우려먹은 좋은 예는 그룹 ABBA의 노래다. 지금도 스웨덴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ABBA의 히트곡으로만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 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맘마미아>
이른바 70, 80 세대를 공연장으로 달려가게 만든 이 뮤지컬은 ABBA 노래를 우려먹은 것이다. 그런데 다시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어 작년에 또 한번 우려먹기에 성공하였다. ABBA 노래로부터 보면 영화 <맘마미아> 는 손자 뻘 되는 셈이다. 무엇이 더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맘마미아>
우려먹기에는 질서가 있다. ABBA 노래를 가지고 뮤지컬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ABBA 노래의 저작권자들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윈윈(win-win)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만약 저작권을 침해하여 파생 문화상품이 나온다면 저작권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을 거추장스럽게 여길 수 있으나, 저작권이라는 재산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창작 활동은 심각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좋은 창작물 보호가 출발점
우려먹기가 성공하려면 좋은 원재료인 창작물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것은 타인의 창작물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통합콘텐츠진흥원이 융합과 우려먹기에 치중한 나머지 저작권 보호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저작권은 규제가 아니다.
창작물의 유통과 보호는 언뜻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산업으로 삼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조화가 가능하다. 통합콘텐츠진흥원과 통합저작권위원회의 출범을 통해 우리 문화가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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