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 중 가장 빨리 취재해 유일하게 쓴 중요한 기사'라는 뜻의 특종 기사. 한국일보가 무수하게 양산해낸 특종 기사들엔 특종이 의미하는'속도'와 '단독' 이상 외에 무언가가 늘 더 있었다. 그것은 '기사 한 줄로 시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로 뛴 한국일보 기자들의 투지와 열정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인간의 냄새였다.
1990년 10월 24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엔 '北기자 4명 한밤 본사 기자 집 방문 1시간'이라는 제목의 특종 기사가 실렸다. 기사 주인공은 서울에서 열린 남북 통일축구 취재를 위해 방한한 북한 기자들. 당시 사회부 기자는 '남북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 기자들을 집으로 초청해 화기애애하게 보낸 하룻밤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종 기사로썼다.
북한 주민이 사상 처음으로 남한 가정집을 방문한 것 자체가 특종이었다. 그 때문에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이삿짐 용 곤돌라를 타고 아파트 고층으로 올라가 창밖에서 취재를 시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특종을 기다리지 않고 특종을 만들어내는 정신은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일보 야근 기자만 따라다니면 낙종할 염려는 없다'는 것은 한때 기자들의 야근 수칙이었다.
한국일보는 제1회 한국기자상수상에 이어 제40회까지 이어진 한국기자상 중 17개를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일보는 전통적으로 사건과 추적에 강하다. 1979년 YH 사건 특종, 85년 식품회사를 상대로 한 독극물 협박사건 특종, 86년 에이즈 양성 첫 내국인 격리 특종, 88년 새마을 비리 수사 도중 전경환씨의 일본 도피성 출국 특종…. 선배들의 기자 정신을 물려받은 후배들은 2000년대 들어 진승현·이용호·최규선·윤창렬 게이트를 발굴·추적해 연일 특종을 터뜨리며 수사기관의 수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전 재산이 30만원이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이 1,000억원대라는 것을 캐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비리, SK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썬앤문 게이트 등을 특종 보도한 것도 한국일보였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오직 독자만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창간정신을 지면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한국일보 특종엔 사람과 문화의 향기도 배어 있었다. 1997년 캄보디아 훈 할머니 특종. 외신을 통해 훈 할머니의 존재를 처음 접한 한국일보는 76일간의 끈질긴 추적과 유전자 감식 같은 과학적 취재 기법을 통해 훈 할머니를 고국에 초청, 가족과의 상봉을 성사시켰다. 당시 이희정 기자는 '가슴으로 쓴 기사'를 통해 특종을 더욱 빛나게 했다. 1999년 기획 취재를 계기로 특종 보도한 '동강을 살리자' 시리즈는 동강댐 건설 백지화로 이어져 환경을 살린 일등 공신이었다.
1967년 5월 '경북 월성군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은 문무왕릉'이라는 제목의 1면 톱 특종은 문무왕릉의 존재를 확인해 세상에 처음 알린 쾌거였다.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벌인 '신라 학술 조사사업'의 성과였다. 73년 경주 천마총 신라 금관 발굴, 74년광릉 크낙새 번식 확인도 한국일보 특종 리스트에 올라 있다.
2007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 초기에 한국일보는 소장 과학자들이 제기한 논문 사진 중복 의혹등 팩트를 집요하게 추적해 결국 서울대의 논문 재검증 결정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당시 특종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의 주장만 담은 여론몰이식 보도가 쇄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일보는 균형잡힌 후속 보도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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