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됐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아직 뜨뜨미지근하다. 정부와 채권단이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채찍질하고 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쓰러진 기업을 정리한 과거의 구조조정과 달리 지금은 부실을 예상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만큼 '체감 온도'가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5개월여간 진행돼 온 구조조정을 중간 평가해 보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갈등 해결사가 없다
가장 큰 문제로 채권단간 갈등을 해결해 줄 장치가 없어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사 구조조정이다. 은행 채권단과 보험사간의 갈등으로 1차 구조조정 평가에서 C와 D등급을 받은 4개 중소 조선사 가운데 C&중공업, 녹봉조선, 진세조선이 구조조정에 실패한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RG(선수금 환급금)를 대출채권으로 포함하느냐의 여부였다.
은행은 당연히 대출채권에 포함대 신규대출 지원시 그 비율만큼 분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보험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가 중재에 나서고, 금융당국까지 직접 개입을 했지만 양자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향후 RG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조선사 구조조정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효성 논란에 빠진 구조조정
구조조정의 실효성도 논란이다. 일단 공급과잉 문제로 우리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되 온 건설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분별하게 난립해 있는 건설사를 일부 정리하는데 성공해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그룹은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벌써부터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핵심 사업에 주력케 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 말 그대로 '재무개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 금호아시아나와 동부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7개 MOU체결 그룹은 가진 재산을 팔아 빚을 청산하는 수준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시중은행 기업여신 담당 임원은"구조조정은 계획단계부터 실행에 옮기기까지 산업간ㆍ업종간 산업합리화를 전제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눈에 띄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투명성 부재로 시장신뢰 잃어
구조조정 대상 선정에서의 투명성이 훼손돼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문제다. 대기업그룹의 경우 당초 14개 그룹이 재무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곳은 9개에 불과했다. 채권단 측에서는 "재무평가 불합격은 재무약정을 맺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고 했지만 약정을 맺은 그룹측은 "부채비율과 현금흐름 등을 봐서는 우리가 약정 대상인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최근 자체 구조조정안을 낸 모 그룹의 한 임원은 "개별 기업입장에서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신뢰가 필수다"며 "선정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 만큼 구조조정 실행 과정에서 만큼은 정부와 채권단, 기업 모두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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