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과 기대, 설렘 속에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1월1일. 한국일보의 1면은'백지'였다. 제호 밑에 연도 표기만 있을 뿐 일절 기사와 사진이 없었다. 신문의 1면은 그날의 뉴스 중 가치가 제일 큰 기사들을 싣는데, 한국일보는 이날 가장 중요한 뉴스가 2000년 1월 1일이 됐다는 사실 자체라고 판단한 것이다.
뉴밀레니엄호 백지 발행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새해 벽두장안의 화제였다. "Y2K 때문인 줄 알았다"며 걱정하는 독자도 있었지만, 획기적이고 참신했다는 격려가 훨씬 많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어느 언론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백지발행은 "한국일보 특유의 역동성과 도전정신의 발로"(경원대 안병찬 교수)였던 것이다.
한국일보는 창간 이후 인구에 회자된 명기획물들을 무수히 쏟아냈다. 때로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고, 때로는 역동적인 사회 변화를 가장 먼저 포착하기도 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가 하면, 우리 사회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시대정신'을 화두로 한 대기획을 선보였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와 지향, 구체적인 사회 변화의 과정과 경로를 모색해보기 위함이었다. 성장과 분배, 정치개혁, 교육·문화, 남북관계, 외교안보, 노동·복지 등 분야별로 내로라하는 진보·보수진영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10차례의 지상논쟁은 학계와 전문가그룹의 지대한 관심과 성원 속에 후에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됐다.
1986년 5월 11일 '문학기행 - 명작의 무대'가 탄생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중한 명작의 본적지를 찾아 창조적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게 기획의도였다. 문학기행을 읽으려고 한국일보를 본다는 독자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3년간 성황리에 이어졌다. 맛깔스러운 글솜씨를 뽐낸 당시 문화부 김훈·박래부 기자는 유명인사가 됐다.
창간 40돌을 맞은 1994년엔 전 세계를 무대로 심혈을 기울인 대기획물이 쏟아졌다. '아메리카 리포트'와 '아시아리포트',' 유럽 리포트'가 그것이다. 편집국 기자들이 대거팀을 이뤄 미 대륙과 중국, 아시아 신흥국가들, 유럽연합(EU)을 수개월씩 누비며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사회시스템 등을 심층 취재했다.
1988년 6월 29일부터시작된 기획시리즈 '신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이듬해 10월까지 60회 연재된 이 기획물은 이전과 달라진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일상, 또래문화를 심층분석한 사회 보고서였다. '신세대'라는 용어는 일반화됐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중에 책으로도 출간됐는데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1996년 11월에는 '네오' 시리즈를 내놓았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시사·생활정보 제공을 기치로 네오클래식, 네오포커스, 네오라이프를 선보인 것.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마약이나 총기류, 특수부대 등 기존에 소화하기 어려웠던 소재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사진 배치와 디자인도 파격적이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직후의 '파워엘리트 교체 진단, 권력이동' 시리즈, 1982년 7월 '여기자 칼럼'으로 시작돼 기명 칼럼의 대명사격이 된 '장명수 칼럼', 1971년 4월부터 연재된 '미주의 한인 70년' 등도 언론계 내에선 한국일보의 명기획물로 꼽힌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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