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적극적 취재와 함께 피의자들의 반론 또한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다.
언론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검찰과 피의자의 입장 사이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고자 했다. 그 결과, 다수의 의미있는 보도를 통해 진실규명에 이바지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성할 대목 또한 적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대해 정치적 판단은 배제하면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검찰이 흘리거나 공개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들만 기사화하지 않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다각적인 취재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달러가 자녀들의 생활비로 사용됐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4월11일자 1ㆍ3면)는 검찰 외부에서 취재된 것이다.
검찰은 보도가 나가자 "수사에 필요하니 취재원을 좀 알려달라"고 본보에 요청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의 회사에서 청와대로 노트북을 보냈다는 보도(4월29일자 1ㆍ5면)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소환 전까지 감추려 했던 '카드'였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의 소환 및 사건 연관성에 대한 단독 보도(5월2일자 1ㆍ5면) 역시 검찰과는 무관한 경로를 통해 취재되고 보도됐다.
한국일보의 취재보도가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표적 사정수사의 의혹에 대해 어느 신문보다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다는 점을 지적(4월13일자 4면)했고, 검찰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을 의혹의 본질과 무관한 탈세수사 등 개인비리로 처벌하면서 '꼬리 자르기'를 하려한다는 지적(5월11일자 1ㆍ3면)도 가장 먼저 했다.
검찰이 성급하게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간 대질신문 일정을 밝힌 점도 비판(5월1일자 4면)했다. 민유태 전주지검장의 연루 의혹도 단독 보도(3월23일자 1ㆍ3면)해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잇따라 진행된 검찰 수사가 전 정권에 대한 표적 사정수사라는 구태의 부활임을 가장 먼저 심층적으로 지적(2008년 9월9일자 1ㆍ3면)했다.
그러나 한국일보 역시 노 전 대통령 서거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재판의 한 당사자인 검찰의 시각으로 구성된, 확정되지 않은 범죄 혐의에 더 큰 비중을 둬 보도했다.
상대적으로 노 전 대통령측에 대한 취재와 해명을 싣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사전 인지 여부'라는 사건 본질을 좀더 천착하지 않고, 검찰이 두고 있는 혐의에 치우친 보도를 했다. 때로는 흥미 위주의 기사들을 게재한 적도 있었다.
검찰이 밝힌 '팩트(사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결과적으로 피의자를 우회 압박하는 전략에 동조한 셈이 됐다. 정제되지 않거나 예단이 포함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취재의 현실적 한계와 검찰발표의 공신력에 의존해온 관행 등을 이유로 내세울 수도 있다. 또한 이런 문제점들은 비단 이번 수사 뿐 아니라 다른 대형사건 수사에서도 늘 제기돼온 것들이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서야 할 언론으로서 이를 핑계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한 이유들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한국일보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신문으로 거듭 나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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