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일차적으로 '언론 책임론'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의 몰아붙이기식 수사도 문제였지만, 이를 '받아쓰기'하듯이 그대로 수용자에게 전달했던 언론은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언론의 책임이 크다"(본보 9일자 4면 보도)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언론 책임론이 나오자 신문들은 즉각 보수ㆍ진보 양쪽으로 헤쳐모여서 상대편의 책임이 더 크며, 상대편의 서거 전ㆍ후 보도 행태가 완전히 상반된다는 식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쪽이 쓰면 다른 쪽이 맞받아치기를 되풀이하는 진흙탕 싸움이다. 지난 1월 미디어법 개정에 대해 자사이기주의를 앞세워 찬반 보도를 쏟아냈던 '미디어 전쟁'의 2차전이 발발한 것 같은 양상이다.
■ 특집ㆍ사설 동원 무차별 공격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끝난 6월에 들어서면서 신문들 간의 이전투구는 본격화했다. 동아일보가 먼저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3일자 6면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에 '국민 가슴에 대못''위선 보는 것 같아 말문 막혀' 등 제하의 기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질타했기 때문에 서거의 책임이 있음에도 연일 보수신문의 잘못만 부각시킨다고 공격했다.
또 한겨레의 5월 24일자 사설 '보수 언론은 그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보수 언론을 질타하는 진보 언론도 사실 서거 이전 검찰의 입을 빌리는 기사를 연일 썼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내용을 담았다.
조선일보는 6일자 6면 전체를 털어 진보 성향 신문들과 MBC가 서거 전후 확연히 다른 보도행태를 보였다며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ㆍ경향신문 만평도 달라져'란 제목의 기사에선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4월 초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만평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희화화해 이전의 우호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서거 이후 갑자기 만평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족쇄(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찬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일관성 없이 방향을 선회했다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보수신문 가운데 가장 맹렬하게 진보 성향의 언론을 공격했다. 6일자에서는 '석고대죄에서 정치적 타살로 돌변한 좌파매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 한겨레 편집국장의 글을 인용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2007년 대선 때 BBK 전 대표 김경준씨의 거짓말을 좌파매체들이 중계방송하듯 보도했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정말 당신들이나 잘하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썼다.
■ "저주" "증오" 원색적 비방
4일자 경향신문은 '비판과 저주의 차이'라는 사설을 통해 동아일보의 3일자 보도에 대한 비판 형식으로 대응을 시작했다. 이 사설은 '동아일보가 경향신문 등을 놓고 자가당착적인 주장을 편다고 하는데, 이는 비판과 비난을 의도적으로 혼동한 데서 나온 것이며, 사실 이들 (보수)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을 대선후보 시절부터 저주의 수준으로 비난했다'고 날을 세웠다.
또 '진보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보수지들의 공범의식 강요에는 필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라고 공격했다.
한겨레는 5일자 4면에서 보수지의 노 전 대통령 보도를 '비판 대신 증오… 죽은 권력 물어뜯기'라고 평가하며 서거의 책임이 보수언론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보수지들이 '증오 저널리즘'에 가까운 양태를 보였고 취재 보도의 기본원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주변에 대해 잡범 수준이라는 식의 칼럼을 썼고, 동아일보는 속어로 만들어진 노 전 대통령 관련 신조어를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제시하며 서거의 배경에 보수지의 책임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8일자 5면에서 보수신문의 공세에 대해 '제2의 촛불, 미디어법 위기감 때문에 조선과 동아일보가 경향, 한겨레를 좌파신문으로 규정하고 언론책임론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동아일보가 2007년엔 광우병 위험을 강조해놓고 2008년에는 괴담으로 몰아세웠다'고 지적하며, 용산참사 보도에 있어선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등 전반적으로 균형감이 상실된 '정권 편향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 "자파이기주의로 기사 이용"
이처럼 좌우로 갈라져 서로 공격하는 신문의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문들이 '자사이기주의'가 확대된 '자파이기주의'를 펼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가 되풀이될 경우 독자들이 매체를 외면하기 때문에 신문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전망도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기자들이 사실 전달을 해야 하는 기사마저 정파적인 입장을 갖고 쓰려는 행태가 굳어진 결과"라며 "자신들만의 의제를 강요하기 위해 기사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 독자들은 더 이상 해당 매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종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편을 나눠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사회 통합을 구현해야 한다는 언론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보수적인 수용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지들이 미디어법 개정 등 중요한 상황을 앞에 두고 이같은 보도행태를 보이는 게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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