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장길산·상도·아리랑 등 연재… 문학기행·시로 여는 아침 '효시'
한국일보는 1954년 창간 이래 문학, 미술, 음악 등 문화 각 분야에서 참신하고 굵직한 기획, 다양한 행사를 선보임으로써 우리 문화를 살찌우고 독자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해 왔다.
'문화신문'으로서의 한국일보의 명성을 선도해간 분야는 문학이다. 창간 첫 해 연재되기 시작한 염상섭의 '미망인'을 필두로 100여 편을 헤아리는 한국일보 연재소설의 목록은 그 자체가 한국현대소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74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연재된 황석영의 '장길산'은 해방 이후 최고의 역사소설로 꼽힌다. 연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2,092회에 걸쳐 연재된 '장길산'은 한국일보만이 쌓을 수 있었던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다.
이후 방북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황씨는 출소후 다시 한국일보에 '손님'(2000), '심청, 연꽃의 길'(2002)을 연재했다. 최인호가 1997~99년 연재한 '상도', 조정래가 1990~94년 연재한 '아리랑', 이문열이 1986~90년 연재한 '변경' 등 한국일보 연재소설은 문자 그대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며 늘 독자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문학 기행'도 빼놓을 수 없다. 1986~89년 주간 연재된 '문학기행 - 명작의 무대'는 당시 김훈, 박래부 기자가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 평사리,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무대인 순천만 등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들의 공간적 배경을 탐방한 후 유려한 기사로 풀어내 수많은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2003년부터 오피니언 면에 자리잡은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작가들의 콩트 형식의 칼럼 '길 위의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기지로 현실을 풍자한다. 소설가 성석제 김영하 이순원 이기호 김종광, 시인 황인숙 등에 이어 현재는 소설가 하성란이 이 코너를 맡고 있다.
한국일보는 시와 함께 한 신문이기도 했다.1959년 한국 신문 사상 최초로 매주 일요일자 1면에 신작 시를 게재해 독자들의 찬탄과 응원을 함께 이끌어냈다. 현재 재독시인 허수경이 사람들면에 연재하고 있는 '시로 여는 아침'은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란이다.
이밖에도 언론인 출신 고도원이 2003~2005년 1면에 연재한 '고도원의 아침편지' 역시 조간신문을 펼쳐드는 독자들에게 한 모금 맑은 옹달샘물을 건네주는 것 같은 청량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년 개최하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한국일보문학상'', 한국출판문화상'도 5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인 문학·출판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행사다. 한국일보는 또 1994년에는 문단의 화합과 문학중흥의 기치를 내걸고 '한국문학인대회'를, 2005년에는'한국일보 문학인의 밤'이라는 문인 대동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美術] 샤갈전 65만·반 고흐전 82만명 관람… 잇단 거장 작품 전시 큰 호응
한국일보는 2000년대에 들어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 수준 높은 전시회를 잇따라 유치했다.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2004년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한 '색채의 마술사 - 샤갈' 전은 국내 미술 전시사의 터닝포인트로 불린다. 샤갈의 작품 120점을 선보여 단일 작가 전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전시는 당시까지 열린 국내 전시 사상최다 관람객 기록(65만명)을 세웠다.
샤갈전을 통해 수준높은 미술전시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확인되자 이를 본딴 블록버스터형 전시개최가 줄을 이었지만, 샤갈전의 기록을 깬 것은 역시 한국일보가 2007년 주최한 '불멸의화가- 반고흐' 전이었다. 한국인이 특별히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의 대표작을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놓은 이 전시는 100일간 82만명이 관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 밖에도 '위대한 세기 - 피카소' 전(2006년), '빛의 화가 - 모네' 전(2007년) 등을 통해 미술애호가들이 꿈에 그리던 거장들의 대표작을 눈앞에 펼쳐 보였다.
올해는 5월 28일부터 9월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전을 앞두고 있다. 이 전시도 1985년 파리 그랑팔레 회고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르누아르전시다. 한국일보가 미술 전시의 대명사가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70년 보수적인국전 중심 화단 풍토의 쇄신을 위해 국내 최초의 민전인 '한국미술대상'을 제정해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1회 공모전의 대상작은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였다.
● [音樂] 한국음악콩쿠르 강충모·송영훈·김선욱 등 스타 연주자 발굴
음악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일보의 노력은 선구적이었다. 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한 '한국음악콩쿠르'와 '안익태작곡상'이 좋은 예다. 한국음악콩쿠르는 중고생 연주자들이 참가하는 경연으로,1974년 시작돼 올해로 36회가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피??허희정 백주영, 피아니스트 강충모 주희성 박종화 김규연, 첼리스트 송영훈 등 뛰어난 연주자들이 이 대회를 통해 발굴됐다. 지난해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2006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차세대를 대표할 피아니스트로 떠오른 김선욱도 2001년 한국음악콩쿠르가 배출한 스타다.
한국일보가 안익태기념재단과 공동주최한 안익태작곡상은 국내 최초의 관현악 작곡 콩쿠르다. 1회(1993년) 임지선을 비롯해 이신우 임준희 최명훈 이귀숙 박태종 등 그동안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곡가들은 한국 창작음악의 미래를 책임질 기둥으로 꼽힌다. 12회째인 2004년까지 이어지다가 지금은 안익태기념재단의 내부사정에 따라 중단된 상태다.
클래식음악을 지원하는 한국일보의 전통은 창간 당시부터 내려온 것이다. 창간 직후인 1954년 11월 오페라 '왕자 호동'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클래식 무대가 활성화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 훌륭한 연주자들을 초청해 좋은 음악회를 꾸준히 주최하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정명훈(피아노·지휘)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화(첼로) 남매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한동일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등 세계적 연주자들이 한국일보가 마련한 무대를 통해 얼굴을 알리면서 발돋움을 시작했다. 1978년 전설적 소프라노 브리기트 닐슨과 조안 서덜랜드의 독창회를 잇달아 여는 등 세계적 연주자를 국내에서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데도 한국일보는 앞장섰다.
이 밖에도 한국일보는 시대를 앞서가는 다양한 기획을 선보였다. 백상배 연날리기 대회(1956년), 미스코리아 대회(1957년), 미국의 홀리데이온 아이스쇼팀 초청 '홀리데이온 아이스쇼' (1959년) 등 한국일보가 주도한 행사들은 언제나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키며 화제를 모았다.
● 한국일보가 낳은 사람들천관우·한운사·김훈… 문단·학계서 두각
한국 언론 최초로 견습기자 제도를 도입하고, 학력 제한을 철폐했던 한국일보에는 창간 초부터 당대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국일보 출신 중에는 특히 문단과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 많았다.
창간 이듬해 입사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던 시인 신석초(1909~1975)는 '고풍' '바라춤' '호접' 등 전통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많은 시편을 남겼다.
1963~80년 한국일보에 몸담았던 수필가 조경희(1918~2005)는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하고, 여성 문화인으로는 최초로 예총 회장을 맡는 등 문화계의 큰 어른 역할을 했다.
'남과 북'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60여 편의 명드라마를 집필해 한국방송작가의 대부로 불리는 한운사(86), 1970년대 이후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시들로 대표적 민중시인으로 꼽히는 시인 이성부(65),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며 2000년대 최고의 작가로 떠오른 소설가 김훈(61) 등은 모두 한국일보에 오래 몸 담았다. 남한산성> 칼의>
학계 인물로는 국사편찬위원을 지낸 천관우(1925~1991), 최정호(76) 전 울산대 석좌교수 등이 한국일보가 낳은 인물이다. 서울YMCA 회장, 소비자연맹 회장을 역임해 시민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정광모(80)도 여기자로는 최초로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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