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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단역배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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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단역배우의 즐거움

입력
2009.06.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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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마더> 가 개봉 10일 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로는 최단 기록이다. 6일에는 23만8,000명이 몰렸다. 더구나 등급이 '청소년관람 불가'임을 감안하면 '괴물 감독'의 괴력이라 할 만하다. 사실 <마더> 는 모정(母情)이라는 진부한 주제, '살인과 누명'이라는 역시 익숙한 틀로 인해 상투적인 영화가 될 위험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이번에는 심리 디테일로 <마더> 를 새로운 느낌의 영화, <살인의 추억> 이 그랬듯 다양한 해석과 반추가 가능한 '깊고 열린' 영화로 나아가게 했다.

▦거기에는 물론 주연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 어머니로서의 집착과 절망, 욕망과 죄의식, 광기와 선택은 분명 김혜자의 새로운 모습이었고, 바보스러움에 감춰진 폭력과 복수를 묘한 느낌으로 표현한 원빈의 연기도 예사롭지는 않았다. 타고난 연기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디테일이 드러날 때까지 스무 번이고 반복촬영을 하는 봉준호의 집념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들 말고도 <마더> 에는 도준(원빈)의 친구인 진태 역을 맡은 진구 등 13명의 조연, 비록 몇 초 동안 나오고는 사라지는 인생이지만 감독이 직접 고른 50명의 단역들이 등장한다.

▦단역 배우는 대사 없이 화면구도를 위한 보조자 역할을 하는 엑스트라, 다분히 지명도를 과시하는 카메오와는 다르다. 역할이 작다 뿐이지 꼭 필요한 존재다. 대사도 있고, 연기도 해야 한다. 골프장에서 진태에게 봉변 당하는 교수 역을 맡은 권병길처럼 때론 제법 이름있는 배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연극 배우들이다. 영화에서도 의사, 교수, 택시기사, 교도관이라는 직업만 있고 이름조차 없는 그들이지만 단역은 스타로 가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송강호도 영화에서의 출발은 <초록물고기> 의 단역이었다.

▦ "야, 너 맞지? 너 배우 하냐?" 30여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고교 동창 녀석이 물어 물어 전화를 해서는 대뜸 이렇게 소리쳤다. <살인의 추억> 에 이어 <마더> 에서 단역(약사)으로 출연한 덕에 요즘 여기저기서 확인 인사를 받는다. 영화감독 육상효가 꿈에서 만난 움베르토 에코는 중년 가장들이 영화에 나오고 싶어하는 이유가 '현실에서 실추된 권위, 성적 좌절감을 잊으려는 몸부림'(한국일보 5월14일자 칼럼 '육상효의 유씨씨'에서)이란다. 상관없다. 잠깐의 어색한 가상이지만 '타자가 된 나'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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