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꿰뚫는 현장 감각"미래 없다" 1996년 주력업종도 바꿔
3월 말 취임한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은 4월부터 '생산 현장이야말로 기업 활동의 뿌리'라는 신념 아래 전세계의 계열사 사업장을 찾았다. 창원, 인천 등 국내는 물론이고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중국까지 샅샅이 돌았다. 취임 10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매출액 25조원(올해 목표)의 거대 기업 사업장에 박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896년 설립된 두산이 1세기를 넘어 지금도 건장할 수 있는 배경은 이 같은 현장경영의 리더십 덕분이다.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빠르게 변신한 것도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는 리더의 과감한 의사 결정의 결과다. 수많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헌 부리를 돌에 부딪혀 떼어낸 뒤 새 부리가 나게 하는' 솔개처럼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두산은 창립 100주년이던 1996년부터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지분을 비롯해 OB맥주 영등포 공장도 팔아치웠다. 주력업종을 바꾸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외부 컨설팅을 최고경영진이 과감히 수용한 결과다.
두산은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뿐만 아니라 에너지, 국방, 생산설비까지 포함하는 인프라 지원 사업(Infra Support Business)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2000년부터 인수합병(M&A)을 시작했다.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사들였다. 국내뿐이 아니다. 원천기술을 확보치 않고는 최고 경쟁력을 보유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담수설비(두산하이드로테크놀러지)와 발전소 보일러(두산밥콕)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와 함께 두산인프라코어는 2007년 친환경 엔진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CTI를 비롯해 중국 옌타이유화기계, 미국 잉거솔랜드의 소형건설 중장비 부문(밥캣)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박용성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밥캣 인수 때에는 현지 직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경영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미국 전역의 사업장을 모두 돌아다녔을 정도다.
이런 노력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황기임에도 올해 매출 규모를 작년보다 10% 정도 많은 25조3,000억원을 늘려 잡았고, 영업이익도 1조8,000억원으로 27%나 상향 조정했다. 박용현 회장은 지난달 15일에는 베트남 쭝?f공단을 찾았다. 보일러와 석유화학설비를 생산하는 두산 비나(Vina)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한 그는 "진정한 강자에겐 위기가 기회다. 세계 최고의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강한 체질 구축을 강조했다. 현장에서 빛나는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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