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2009년 한국출판문화상 50년을 맞아 새 문화기획 '책, 미래와의 대화'를 주간 연재한다. 반 세기 한국출판문화상의 전통은 책 속에 담긴 우리의 고민과 꿈이야말로 한국 사회와 인류의 나침반이 되리라는 확신 위에 서 있다. '책, 미래와의 대화'는 당면한 21세기는 물론 더 먼 미래 우리 삶의 조건에 영향을 줄 다양한 담론의 흐름을 깊이있게 조망할 것이다. 경제위기, 가족 해체, 환경 문제, 민주주의의 위기 등의 화두를 해당 주제를 다룬 당대의 고전 혹은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책과 저자에 대한 심층 취재로 파고들 것이다. 첫 회로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대안에 대한 모색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저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를 통해 살펴본다. 다시,>
시장은 과연 선이고 국가는 과연 악인가?
국가를 억압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더 적절하고 국가의 역할을 줄이면 줄일수록 경제에는 이롭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 담론은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휩쓸었다. 구체적으로 시장 개방, 정부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 촉진, 주주이익 보호, 사회복지예산 삭감 등의 정책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는 정치ㆍ경제 정책으로 나타났다. 한국, 태국 등 동아시아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1990년대 후반 IMF 같은 다국적 통화기구가 영ㆍ미식의 개혁을 주문하면서 지배적 정치ㆍ경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장하준(46)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ㆍ미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기만성과 허구성을 폭로하며 그 대안을 고민해온 경제학자다. <사다리 걷어차기> (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 (2005), <국가의 역할> (2006), <나쁜 사마리아인들> (2007)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대중과 함께 고민해온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나쁜> 국가의> 쾌도난마> 사다리>
<쾌도난마 한국경제> 와 <나쁜 사마리아인들> 로 2005년과 2007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유일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장하준 교수가 지난해 아일린 그레이블 미 덴버대 교수와 함께 펴낸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부키 발행)는 신자유주의 경제담론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입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자유시장 원리를 지속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영미형 모델이 보편적 시스템인 반면 동아시아 모델은 특수한 시스템이다' 같은 신자유주의의 신화를 논파하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 모델을 제시했다. 다시> 나쁜> 쾌도난마>
케임브리지에 있는 장하준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에 대해 "시장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하고 좋은 제도 중 하나이지만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로는 복잡한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여러가지 대안을 모색하게 됐다"고 저술 동기를 밝혔다. 다시>
이전의 저작들처럼 신자유주의가 유포해온 다양한 신화를 깨뜨리는 그의 논리는 명쾌하다. 관세나 다른 형태의 정부규제로 제한받지 않는 자유무역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해 그는 "자유무역을 통해 성공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킨 국가는 없다"고 반박한다. 지금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인 영국과 미국은 18~19세기 광범위한 유치(幼稚)산업 보호 전략을 취했으며, 한국 대만 브라질 등 1960~80년대에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 나라들도 특정 산업에 대한 보호관세, 보조금, 수출장려금을 혼합해 사용하는 '전략적 무역정책'을 폈다는 것.
정권이 바뀔 때마다 뜨거운 감자가 되는 공기업 민영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영기업이 독점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경쟁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지만, 장 교수는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의 경우 1996년까지 국영기업이었지만 민간기업 푸조뿐 아니라 외국의 다른 자동차기업과 경쟁하면서도 살아남았고, 한국의 포스코 역시 민영화되기 전까지, 설립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한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의 견해는 자주 오독되기도 한다. 규제완화, 민영화, 개방화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태도는 규제강화, 국영화, 대외폐쇄로 읽히기 일쑤다. 국방부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지난해 불온도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경제체제에는 홍콩모델 아니면 북한모델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자본주의 블록에 있어??국가 개입의 정도는 미국이 다르고, 스웨덴이 다르고,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는 그는 "정책 입안자는 일부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다른 영역에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가 제시하는 정책대안을 조합해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예를 든다. 이 나라는 자유무역을 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지만, 주택의 85%를 주택공사가 공급하며 GDP의 22%를 공기업이 생산한다. "'섞어 쓸 수 없다는 것'은 그럴 의사가 없으니 하는 이야기이지, 그럴 마음만 있다면 상당 정도 섞어 쓸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다시> 나쁜>
물론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도 아니고, 개방화ㆍ자유화ㆍ세계화가 상당히 진척된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의 대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전체적인 경제운용의 틀을 신자유주의자들이 통제하며 규칙을 정해놓은 뒤 '당신 같이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지고지순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경제학계에서 '장하준'의 위치는 조금 애매하다. 시장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배척하지도 않으며, 성장을 이뤄낸 박정희식 정책을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인 경제학자들로부터도 배척당하고, 시장주의를 거부한다는 오해 때문에 주류 경제학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이 깨지고 있는 최근에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표방하며 집권한 한나라당은 4월 그를 초청해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을 열기도 했다. 장 교수는 "특강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제 의견에 100% 동의하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10년간 신자유주의를 따르면서 여러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 아닙니까. 대안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경제·자유주의' 다룬 역대 수상작들
역대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가운데는 경제, 그리고 자유주의 문제를 다룬 저작도 포함돼 있다.
1978년 제19회 저작상을 받은 최종식 서울산업대교수의 <서양 경제사론> (서문당 발행)은‘경제와 사회의 관계는 신체와 의복의 관계와 같다’는시각 아래서 양 경제의 흐름을 파악한 역작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임종 1개월을 앞두고 탈고한 것으로, 출간반년후에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시상식에 저자가 참석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책이기도 하다. 서양>
서구 자유주의 사상의 출현과 발전과정, 전망 등을 꿰뚫은 노명식 한림대 교수의 <자유주의의 원리와역사> (민음사발행)는1991년 제32회 저작상을받았다. 자유주의의>
노 교수는 수상 인터뷰에서“자유주의가 우익의 보수주의와 좌익의 공산주의로부터 공격 받고 있는 사실은 아직도 자유주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것”이라고 밝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3가지 흐름
2007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며 신자유주의의 대안 담론들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학계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논의의 흐름을 왼쪽에서부터 전통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사회민주주의적 대안, 개혁된 신자유주의적 체제론으로 대별하고 있다.
가장 두터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회민주주의 노선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이들의 모델이다. 실물 차원에서는 세계화ㆍ개방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만, 금융이 자립적인 이윤 추구의 주체로 경제주도권을 장악하는 데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와 복지국가론이 핵심 요지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의 저자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다. 국내에서는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 조원희 국민대 교수 등이 같은 입장이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도 이들과 맥을 같이한다. 인간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복지국가도 자본주의 체제와의 타협으로 간주한다. 미국보다 좌파의 뿌리가 튼튼한 유럽 학자들이 눈에 띈다. <자본의 반격> 의 저자 제라르 뒤 메닐 파리 10대학 경제학과 교수 등이다. 국내 학자로는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 정성진 경상대 교수 등이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자본의>
우파 가운데서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있다.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운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대표적이다.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공동체를 통해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 골자.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취업계층 보호를 위한 공공복지 확대, 도태된 산업의 경쟁력 있는 업종으로의 전환 등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원희 교수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전통적 좌파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지지그룹에서도 입장이 많이 바뀌고 있다”며 “전통적 좌우 개념으로 분류할 수 없는 대안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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