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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15년 해부/ 풀뿌리 민주 뿌리 내렸지만 아직은 '미완의 分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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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15년 해부/ 풀뿌리 민주 뿌리 내렸지만 아직은 '미완의 分權'

입력
2009.06.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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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기 진입한 현주소

내년 6월2일 16개 광역 시ㆍ도와 230개 기초 시ㆍ군ㆍ구에서 지방선거가 일제히 실시된다. 1년을 앞둔 시점이지만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 후보들의 움직임은 벌써 활발하다. 여야 정당들도 서서히 선거 준비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내년 지자체 선거의 승패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정국의 명운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집권 중반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중차대한 기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의 승패와 정국 영향력을 따지기에 앞서 한국일보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가 출범 15년에 접어들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지방자치제가 어린이의 티를 벗고 청소년기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그간의 공과를 냉정히 평가하고 발전적 개선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1995년 출범 이후 지방자치제는 주민 복지서비스개선, 낮아진 행정관청의 문턱,봉사하는 단체장의 등장 등으로 주민 생활에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치권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 지방정부 간 알력, 주민의 무관심, 투명성 제고를 위한 내부 통제시스템 미흡, 지역경제 취약, 중앙과 지방의 여전한 격차 등 미완의 과제도 여전하다.

특히 단체장을 둘러싸고 비리와 부정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생색용 전시성 사업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ㆍ도 의원 유급제도 실시됐지만 지방 의회가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혈세낭비와 시행착오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방선거 1년을 앞두고 지방자치제가 한걸음 더 성숙해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본다.

■ 주민 곁 '화음'

지방자치제 15년은 이제 공과를 냉철히 평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는 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뜻을 우선시해 정책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놓고 지역주민에 책임을 지는데 의미가 있다. 과거 임명제 시절 중앙의 인사권자만을 쳐다보는 행정에서 주민을 중심에 놓는 행정으로 바뀌었다는 게 가장 큰 긍정적 변화다. 주민복지 서비스 개선, 경쟁적 지방발전 노력, 표를 의식한 봉사형 자치단체장 확산, 의욕적인 사업구상 등이 주민 중심의 자치행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최병대 회장(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인사권자를 위한 행정에서 주민의사를 중시하는 행정으로 변해 행정문턱이 낮아진 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획일적으로 중앙에서 지시가 내려오던 것이 지금은 지역이 처한 상황과 지역자원의 특수성을 살리는 다양한 행정이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도 했다.

전남 함평의 나비축제가 지역특성을 살린 지방자치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평범한 시골을 일약 스타마을로 탈바꿈 시킨 나비축제는 1,500만 관광객에 2,000억원의 경제효과를 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함평은 '나비쌀'을 출시했고, 채소와 곡식에도 '나비'를 붙이면서 성공신화를 다른 분야로 확대시키고 있다.

파주의 장단콩 축제도 비슷한 경우다.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재배되는 특산물인 장단콩을 널리 홍보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제도적 측면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승진시험 등 인사제도를 개편, 행정의 효율성을 높인 경우도 지방자치의 과실로 평할 수 있다.

서울 성동구가 올해 실시한 '사무관 승진 자격이수제'가 그런 케이스다. 과거에는 특정시점에 승진시험이 있어 공무원들이 일제히 이에 매달리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으나 승진 자격 이수제는 기본과목, 교양과목, 언어과목을 형편에 따라 이수하도록 해 업무 공백을 최소화했다.

재정분야에서 주민들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추세도 주목할 대목이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도 중요하게 부각됐고,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개진해 예산에 반영하는 주민참여 예산제가 일부 자치단체에서 실시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주민들이 직접 인터넷으로 제안할 수 있고, 인터넷 설문조사 후 50% 이상의 주민이 동의해야 사업이 채택되는 방식도 일부에서 실시중이다.

공직사회의 부패를 제도적으로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도 민선 자치단체장 체제에서 나왔다. 서울시는 1999년 처음으로 공무원 청렴도 조사를 실시해 시정에 반영했으며, 이후 중앙부처들이 이를 벤치마킹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위생과 세무, 주택건축과 건설공사 등 각 분야에서 민원을 해본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행정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했다.

또 서울시내 자치구 순위도 발표, 전년도보다 청렴도 등이 향상된 자치구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특히 민원서류의 처리 경로를 전산화해 어느 서류가 어느 자리에서 며칠?있는지를 드러나게 해 공무원이 의도를 가지고 서류처리를 지연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최 회장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한국의 지방자치가 재도약하려면 지역사회의 좋은 인적 자원들을 활용하는 주민참여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면서 "다만 주민자치를 강화할수록 중앙으로부터 위임받는 단체자치의 역할이 줄어드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원 기자

■ 비리 속 '잡음'

#장면1

지난 2006년 5ㆍ31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방 광역시의 한 구청장 공천을 희망한 A씨는 해당 지역구 의원 B씨를 찾아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노트를 들여다본 의원은 깜짝 놀랐다. 의원이 지역구에 내려올 때면 A씨는 의원이 먹은 밥값과 술값을 계산하곤 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던 터라 의원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트에 언제 어디서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빼곡히 기록돼 있었고, A씨가 계산한 술값이 1,000원 단위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A씨는 "공천을 못 받으면 이것을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면2

홍사립 서울 동대문구청장이 지난달 26일 부하 직원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 3,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그날자로 구청장직을 내놓았다. 앞서 김효겸 관악구청장도 인사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구청장 직무가 정지됐다. 1995년 7월 초부터 2005년 12월 말까지의 집계된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지자제가 시작된 1~3기 단체장 가운데 160명이 각종 범법 행위로 기소됐다. 이 가운데 뇌물수수가 73건에 달했다. 단체장이 광역 16명, 기초 230명 등으로 3기를 합치면 75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단체장 10명 가운데 1명이 뇌물을 받아 재판정에 섰다는 의미다.

출범 15년째를 맞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위기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일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고질적인 비리와 부패, 무분별한 난개발에 혈세만 낭비하는 치적용 사업의 남발, 자치단체 상호간의 지나친 경쟁과 갈등 양산 등 위기 징후는 뚜렷하면서도 광범위하다.

무엇이 문제인가.'견제 없는 권력'을 양산하는 현 지자제 선거시스템에서부터 모든 문제는 출발한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정당 공천을 통해 선거에 출마한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의 공천은 대개 지역구 국회의원의 뜻에 달렸다. 지역구 의원에게 돈을 갖다 받치든, 협박을 하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 된다.(장면1) 영호남 등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조차 유권자들은 정당만 보고 '묻지마 투표' '싹쓸이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만 보자.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2006년엔 한나라당이 시의회를 휩쓸었고, 국민회의 고건 시장이 당선된 1998년엔 국민회의가 휩쓸었다. 지방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단체장과 의회는 '끼리 끼리' 모이기 일쑤다.

기초단체장이 주무르는 권한은 막강하다. 인사권, 예산편성권, 인ㆍ허가권, 조례 발의권 등을 갖는다. 아파트 건설, 공원 조성, 음식점 위생검사 등 손 대지 않는 곳이 없다. 기초단체장은 그래서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린다. 하지만 지방의회의 견제는 형식적이다.

권한이 크면 부패의 유혹도 많다.(장면2) 부패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주민 표심만 의식하는 자체장들은 눈에 띄는 일만 하려고 한다. 아무런 고민없이 수십억 원대 도서관, 문화센터, 오페라홀 등 생색내기 사업에 혈세를 쏟아붓는다. 이 역시 지방의회의 견제 부재가 원인이다.

선진국에서는 지자체장이 특정 정당 소속일 경우 주민들이 지방의회 의원으로 반대 정당 출신을 많이 뽑아줘 각 정당이 균형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자치단체장에 대한 견제 및 감시기능이 작동되도록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는 "특정 정당이 지방권력을 독점해 단체장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주민 관심과 참여도 부족해 각종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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