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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서 무딘 시골형사 변신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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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서 무딘 시골형사 변신 김윤석

입력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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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의 등장은 느닷없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도박꾼 아귀('타짜') 역으로 벼락같이 대중에 이름을 알렸고, '추격자'로 단번에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추격자'로 손에 쥔 남우주연상만 해도 대종상과 대한민국영화상 등 7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야 연기에서도 출연료에서도, 충무로 정상급에 이른 그가 다음 도약을 위해 선택한 영화는 휴먼 코미디 '거북이 달린다'이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김윤석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오늘과도 같은 내일을 사는" 시골 형사 조필성을 연기한다. 점심 식사가 하루의 주요 일과이고, 돈을 건네는 포주를 위해 라이벌 포주를 잡아들이는 함정수사도 마다않고, 아내의 통장에서 몰래 돈을 빼내 소싸움에 내기를 거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역할. 불룩 튀어나온 배로 뒤뚱거리며 달리는 모습은 김윤석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도 일부 관객들에게선 "또 형사야" 하는 반응이 바로 나올 만하다. 모자 쓴 수배범과의 대결, 게다가 '달린다'는 동사가 붙은 영화제목에 이르면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라는 날선 목소리도 튀어나올 듯하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쉴새없이 뛰어다니던 '추격자' 속 전직 형사 엄중호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해다. 영화를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윤석이 시나리오가 쇄도하는 와중에 겉모양만으로는 대중들의 오해를 살 만한 '거북이 달린다'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대사가 살아 있어서"였다. "대사가 사실적이면서도 함축적이었다. 드라마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로운 코미디가 곳곳에 배어있었다. '야 정말 이 시나리오 쓴 사람(이연우 감독)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는 이 감독을 만난 날 곧바로 영화의 배경이 된 충남 예산군으로 직행했다. "이렇게 향토색 짙은 영화는 현장에 가서 느껴봐야 안다"는 생각에서였다. 예산군에 당도하자 그는 "역시나…"를 연발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 감독은 경찰서가 어디에 있고, 필성의 아내가 운영하는 만화방이 어디쯤이고 필성이 잠복을 어디서 하는지 등을 다 머리 속에 두고 있었다. 영화의 행간에 녹아든 이야기들을 완벽하게 육화시켜 놓았더라. '그래 한번 해보자'는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추격자'와는 자세부터가 달랐다"고 그는 말했다. "내일 촬영한다고 술을 피하진 않았다. 오히려 음주를 해야 나른하고 긴장감이 풀린 필성의 모습이 나오니까. '추격자' 때는 피가 튀는 일촉즉발의 장면들이었으니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는 역할을 위해 그는 "배우로서의 기본적인 '관리'도 포기했다"고 했다.

4개월 가량 예산에서 먹고 자며 "오버는 하지 말자"며 촬영에 임했다. "말 끝을 '유~'로 느리게 빼는 정형화된 충청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액션도 민첩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NG가 났다. 나는 멋있게 나오면 안 되니까… 차근차근 기다리는 마음으로 찍었다."

수배범 때문에 땅에 떨어진 가장의 자존심과 형사로서의 위신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필성의 모습에선 우리 시대 40대 보통 남성의 삶과 애환이 읽힌다. 여덟 살, 다섯 살 난 두 딸을 둔 김윤석은 "필성도 딸이 둘이고 나이도 나랑 비슷하니 감정이입이 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타짜'의 최동훈 감독의 액션판타지 '전우치'다. 도사 화담 역으로 강동원, 임수정, 유해진 등과 호흡을 맞췄다. "상업적으로 힘들겠다 싶은 시나리오라도 감독의 작가주의 정신이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 영화처럼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이라면 100% 일조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 영화? 나는 좋다. 출연료가 적어도 그게 문제겠는가."

■ 리뷰/ 영화 '거북이 달린다'

예상된 플롯을 뒤엎는 인물의 승리다. 뻔히 노출된 범인과, 늘 코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형사의 대결 구도, 그리고 반복되는 추격의 모티프는 지난해 화제작 '추격자'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 뒤쫓는 자로 같은 배우 김윤석이 나오는 사실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다르다. '거북이 달린다'는 '달린다'는 이야기보다 '거북이'라는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구멍난 아내(견미리)의 팬티를 보고 소싸움에서 한몫 챙기자는 생각을 하는 농촌의 형사 필성(김윤석)부터 시작해 교사, 아줌마, 건달과 양아치까지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탁월하게 살아있다.

딸의 담임교사가 필성에게 일일교사를 부탁하는 장면. "소방관 하는 누구 틱쳅?" "나랑 동기 아뉴." "지난달 일일교사 때 소방차까지 끌구 와서 난리가 났었슈." "아, 지야 수갑, 가스총 뭐 이런 거면?" "약허쥬! 소방차가 떴다니께. 정 바쁘시면 건강원 하시는 박씨에게 부탁해서 뱀이나 몇 마리…"

악명높은 현상수배범(송기태)이 나타났다는데도 "왔으면 우리가 어떻게 잡아"라며 지나치고, 서울서 내려온 특수기동대에게 "저녁들을 자시고 오신겨?"라는 '인간적 멘트'만 날리던 형사들이 "니들은 뭐했냐"며 기동대를 밀어내는 장면에 이르면, 한심스럽던 그들이 훈훈한 시골사람들로 보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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