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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 한국 문화사의 산 증인, 知天命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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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 한국 문화사의 산 증인, 知天命에 이르다

입력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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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23일, 한국일보 1면에 특별한 사고가 실렸다. ‘한국일보사에서는 한국출판문화상을 설정, 매년 1회 양서를 가려 널리 일반에 추천하고 편ㆍ저자 및 출판사를 표창함으로써 우리나라 출판문화 향상에 이바지하려 합니다.’

한국출판문화상이 제정된 1960년 무렵은 우리 출판계가 조악한 전집류, 정체불명의 번역물, 저질 덤핑도서에 휘둘리던 시절이었다. 우리 필자가 쓴 우리의 좋은 책을 골라 상을 줌으로써 우리 출판문화를 붇돋겠다는 한국출판문화상의 제정은 그런 현실에서 ‘문화의 총체로서의 책’의 가치를 내다본 한국일보의 선구적 안목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출판문화상은 사람으로 치면 지천명의 연륜에 이르는 동안 “한 해 나오는 책 가운데 가장 좋은 책을 선정해 시상한다”는 초심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와 운영으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던 여타 출판 관련 시상제도와 달리 국내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권의의 전통을 굳건하게 이어오고 있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국출판문화상은 고 백상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의 뜻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출장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는 애서가이자, ‘백상장서’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의 희귀서적 8,000여권을 소장했던 장서가였던 백상은 정진숙 을유문화사 대표 등 당시 출판계 중진들과 뜻을 모아 상을 제정했다.

‘국내의 유일무이한 출판상’이었던 만큼 한국출판문화상은 당시까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국내 출판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고 한만년 일조각 대표는 생전 “그 때만 해도 사회에서는 출판을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상(商)의 범주에 넣어 비하하는 잘못된 풍조가 남아있었다”며 “이를 불식하는 데 출판문화상이 크나큰 공헌을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한국출판문화상의 각 시상 부분 중 유일하게 상금으로 책의 저자를 격려한 저술상은 학계의 연구자들에게는 영예로운 학술상이기도 했다. 제27회(1986) 수상자인 조동일(70) 서울대 명예교수는 “학술상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은 학자들을 크게 격려해주는 중요한 상이었다”며 “출판 자체뿐 아니라 출판의 기초작업인 저술 분야의 중요성을 반영해온 오랜 전통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김언호(64) 한길사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50년 전 이런 상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선구적인 일”이라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들은 해방 이후 한국 인문학의 성과를 증언하는 책들”이라고 말했다.

시상 제도 변천

상 제정 당시인 1960년 한 해 한국 출판계가 펴낸 책은 모두 1,600여종. 지난해 출간된 도서(4만3,099종)에 비하면 25분의 1 규모에 불과하다. 그처럼 출판문화상 출품도서의 숫자도 국내 출판계의 성장에 맞춰 비약적으로 늘었다.

1회 당시 출품된 도서는 121종 402권이었으나 18회(1977)에 200종, 28회(1987)에 300종을 넘어섰고, 37회(1996) 1,074종이 출품되면서 출품도서 1,000종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에는 813종 1,599권의 책이 출품됐다.

상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다. 한국출판문화상이란 이름으로 출발했으나, 출판문화 진흥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이 상을 제정했던 백상의 유지를 기려 38회(1997)부터 45회(2004)까지는 ‘백상출판문화상’이란 이름으로 운영됐다. 46회(2005)부터 다시 한국출판문화상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출판계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시상 분야도 진화를 거듭했다. 제정 당시에는 출판사가 상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3회 때부터 저자ㆍ편자ㆍ역자가 받을 수 있는 ‘저작상’과 출판사에게 돌아가는 ‘제작상’으로 세분화되며 체제를 갖췄다. 제작상 명칭은 31회부터 ‘출판상’으로 바뀌었다. 출판상의 경우 한 분야에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획편집, 학술기획, 번역, 전집, 사료정리, 문고, 사진사료, 사진ㆍ화보 등으로 10~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시상했다.

46회부터는 시상 분야를 저술(학술ㆍ교양 두 부문), 번역, 편집, 어린이ㆍ청소년 4개 분야로 정비하고 공로상 성격의 백상특별상을 신설, 현재의 체제를 확립했다.

1회 때 상금은 30만환. 쌀 한 가마에 1만7,000환 정도였으니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금액이었다. 현재는 저술(학술ㆍ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ㆍ청소년 분야에 각 500만원, 백상특별상에 300만원의 상금을 준다.

한국출판문화상 제정 이후 가장 많이 수상한 출판사(저술상 기준)는 일조각으로 16차례 수상했다. 민음사(8회). 지식산업사(7회), 일지사(4회), 한길사(3회)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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