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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그 이후/ 안으로 눈 돌리는 '아시아의 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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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그 이후/ 안으로 눈 돌리는 '아시아의 용들'

입력
2009.06.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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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중심 싱가포르·홍콩·대만 '북유럽 모델' 활로 찾기

올해 1월 완공된 싱가포르 서부 해안의 자동차전용터미널에는 벤츠를 비롯한 전 세계 최고급 승용차들이 가득 차 있다. 화물 컨테이너 처리량에서 세계 1위인 싱가포르항 주위에는 일손을 놓은 빈 배들이 부지기수다.

싱가포르 위기는 해운항만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탄탄한 고부가가치 가공무역이 주도하는 제조업이 여전히 금융업을 압도하지만,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번지면서 수만 근로자들의 근무일수가 주 3, 4일로 줄어들었다. 이들의 임금도 깎여 내수 침체도 심각하다. 필립 요 싱가포르 총리 경제부문 특별고문은 “세계경제가 더 악화한다면 싱가포르로서는 탈출구가 없다”고 토로했다.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모범국으로 평가받던 대만, 홍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국가주도로 경쟁력 있는 몇 개 분야를 특화해 수출하는 전략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도시를 건설했다. 하지만 효자노릇을 하던 높은 대외개방과 수출주도 경제구조는 금융위기 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돌변했다.

대만은 과거 정부가 세금감면, 공장부지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나라경제 전체를 전자산업으로 집중한 것이 화를 키웠다. 올들어 전자 부문 수출이 절반 이상 줄면서 20여만명의 근로자들은 장기 무급휴가를 떠났다. 금융산업 의존도가 높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홍콩에서는 한 실직 여성이 도널드 창 행정장관이 출연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자살협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0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대만은 FTA 체결 초기 단계에 진입하는 등 대 중국시장 교두보를 마련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수출의존 일변도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밖에서 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눈을 안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인구가 각각 460만 명과 2,300만 명에 불과한 싱가포르와 대만에게 전통적 방법으로 내수시장을 확충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저성장에 적응하면서 이 과정에서 고통이 큰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유럽 소국들은 이들의 발전모델이 될 수 있다. 핀란드 노키아 회장 겸 로열더치셸 회장인 요르마 올릴라(58) 회장은 최근 “북유럽이 1990년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채택했던 전략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북유럽 자본주의는 세계화에 개방적이면서도,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모든 이들에게 질 높고 평등한 교육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북유럽의 발전모델이 아시아 강소국들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그간 발전의 밑바탕이 됐던 위계적인 ‘유교 자본주의’ 가치 변화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20세기 아시아 모범국들이 21세기에도 그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가장 결정적인 숙제가 바로 이것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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