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레이미 감독을 아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전세계에서 25억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인 미다스의 손이다. 주류 자본에 변방의 감성을 주입했던 그가 오래도록 블록버스터 뒤에 숨겨놓았던 비주류의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제목은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라'는 끔찍한 제목의 이 영화는 주술에 걸려 악마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갈 운명에 놓인 한 여인의 사투를 그린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관객을 덜덜 떨게 하는 동시에 폭소까지 터트리게 만든다. 이른바 '호러 코미디'. 유령들의 참혹한 살인극으로 관객을 웃겼던 레이미의 1983년 데뷔작인 저예산 영화 '이블 데드'와 궤를 같이 한다.
설정부터 흥미롭다. 친절하고 성실한 대출 담당 은행원 크리스틴(알리슨 로먼)은 어느날 승진 욕심에 한 고객의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거부한다. 그의 매몰찬 결단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여인은 하필이면 영험한 능력을 지닌 집시 가누시(로나 라버). 그가 악마의 저주를 퍼부으면서 평화롭던 크리스틴의 일상은 악몽으로 뒤바뀐다.
B급 정서로 충만한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할리우드 주류에 입성했던 레이미는 18년 만에 만든 공포영화에서 장기를 남김없이 발휘한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효과음이 고막을 긁고, 스크린에 펼쳐지는 서늘한 화면이 심장을 죈다. 마치 '공포영화는 이렇게 만들어라' 하는 유명 강사의 강의를 접하듯 공포의 순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드래그 미 투 헬'의 재미는 단지 공포감을 조성하는 영화적 세공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악마를 대면하게 된 크리스틴이 "난 단지 지점장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동물을 제물로 바치라"는 영매사의 요구에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맞받아치는 장면 등은 심장이 아닌 배꼽을 자극한다. 관객은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을 부여안고 웃음을 터트려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에 심취한 영화광이라면 광분할 만한, '스파이더맨'에 갈채를 아끼지 않은 관객이라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이색 공포영화다. 특히 서명 한 번으로도 사람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본다면 더욱 모골이 송연할 만하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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