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의원 공천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치 개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 개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야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 의회의 행정부 견제 미흡, 여야의 물리적 충돌 등 정치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의원들이 당 지도부나 계파 보스에 구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갖는다면 행정부 견제 기능 등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의원들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것은 공천 족쇄이다. 과거 여야 정치권의 보스들은 공천과 돈(정치자금), 자리(당직 및 국회직, 정부직 임명) 등 세 가지 수단을 통해 의원들을 통제했다.
하지만 정치자금 수수를 통한 계보 관리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당직이나 장관 임명 등도 의원들을 제어하는 고삐가 될 수 있지만 이런 수단들은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공천은 여전히 의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금배지를 떼야 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 지도부나 계파 보스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공천 제도는 기본적으로 중앙당의 하향식 결정 방식이었지만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16대 총선까지는 중앙당 지도부가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여당의 공천 과정에서는 대통령의 입김이 절대적이었고, 야당에서는 총재 1인 또는 복수의 계파 보스들이 공천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선(先) 중앙당 심사_후(後) 국민참여형 경선’ 이라는 상향식 공천이 부분적으로 도입됐다. 중앙당이 소수의 후보자를 선거구에 추천하면 지역 주민과 당원들이 참여하는 경선에서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도 전문성을 갖춘 신인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돈과 조직을 갖고 지역구를 다진 기득권자들이 유리해지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상당수의 외부 인사들까지 포함된 중앙당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공천을 심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밀실 공천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여야 정치권과 학계 등은 한국에 맞는 공천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한나라당 쇄신특위는 중앙당 공천심사위를 확대한 ‘중앙당 공천 배심원단’이 객관적 공천평가지수를 개발해 심사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당내 전문가, 지역주민 대표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여론조사와 의정활동평가 등을 통해 현역의원의 교체 여부를 결정한 뒤 면접과 토론 등을 거쳐 공천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위해서도 분야별 공천심사 패널을 구성한다.
미국처럼 예비선거 제도를 도입해 지역 주민들에게 후보자 공천을 맡기자는 제안도 있다. 한국에는 진성 당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투표를 통해 후보자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선택적으로 ‘선 중앙당 심사-후 경선 방식’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중앙당에서 표준화한 평가지수를 활용해 공천을 심사하되 이를 기초로 일부 지역에서는 2, 3인의 후보를 놓고 경선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어떤 공천 방식을 채택하든 보스에 대한 충성도가 아니라 의정활동 능력에 따라 공천자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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