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하던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현재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행정구역 개편 여부는 지방자치 발전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여야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공을 들여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여야는 17대 국회에 이어 18대에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연말까지 논의를 끝낼 방침이지만, 개편 방향에 대한 개괄적 합의조차 부실한 상태여서 결과를 낙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본회의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후 3달이 넘도록 특위는 본격적 활동을 시작도 못했다. 쟁점법안 논의에 밀려 지방행정체제 개편 문제가 후순위로 처진 것이다.
물론 논의의 물꼬가 트일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다. 17대 때 특위를 이끌었던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과 권경석 의원이 이번에도 위원장과 간사를 맡아 논의 연속성 유지의 전제는 마련됐다. 민주당에서도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으로 적극적 행정구역개편론자인 최인기 의원이 간사를 맡았다.
여야는 2006년 지방선거 직전 사실상 광역자치단체인 도(道)를 폐지하고 기초자치단체인 시ㆍ군ㆍ구를 70개 안팎의 광역단위로 통합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현행 2단계인 지방행정구역을 1단계로 축소하는 기본 방향은 이미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향후 특위에서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도 폐지에 대한 공직사회의 반발과 주민들의 거부감이 크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시ㆍ군ㆍ구를 몇 개씩 묶어 광역단위화 하는 데 있어서도 해당 지역간 주도권 경쟁이 주민들간 반목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개편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많다.
때문에 특위는 향후 논의의 방향을 ‘시ㆍ군ㆍ구 통합’과 ‘읍ㆍ면ㆍ동의 순수한 주민자치단체화’ 등 두 가지로 설정했다.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당분간 도 폐지는 거론하지 않을 방침이고, 특별시와 광역시도 일단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특위는 대신 학계에서 개략적 합의가 이뤄진 대로 전국의 시ㆍ군ㆍ구를 인구 70만명 정도로 묶어 70개 안팎의 통합자치단체를 만들어가되 이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도 폐지 문제를 본격 거론할 방침이다. 이른바 단계적 방식이다. 허태열 위원장은 “현재 도 업무의 70% 정도가 국가위임사무인데 기초단체들이 통합되면 도는 자연스럽게 국가행정기구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위는 현재 각종 증명서 발급 외엔 주민지원업무가 전무하다시피 한 읍ㆍ면ㆍ동사무소의 기능을 실질적 주민자치기구화하는 데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특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솔직히 배치된 공무원들이 불필요하게 많다”며 “선진국처럼 주민 자치활동을 위한 기반시설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야는 내년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 늦어도 올해 말까지 개편안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6월 임시국회 기간 내에 소위를 구성, 특별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고 전국적인 설명회 겸 공청회도 갖기로 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