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내 속에 있어서
제 발목을 제 손으로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내 속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건
언제나 나다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울지 않는데
내가 울어봤자
뭐가 달라지나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을
때려서 울리려고
데굴데굴 타따미를
굴러는 보지만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는 건
언제나 나다
해는 문득
처마 끝에서 저물고
나는 밀려나
굴러 떨어진다
울면서 툇마루 끝을
굴러 떨어진다
울어주렴
울어주렴
● 이시하라 요시로오(1915~1977)는 1939년에 군에 입대하여 북방 정보요원으로 하얼빈으로 갔고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던 시기에 소련군에 체포되었으며 1948년 스탈린 사망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3년 간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서 시인, 그리고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결국 1977년에 자살을 했다.
이 시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그의 시이다. 그의 시에는 시베리아 시절을 그린 시가 많다는데 ‘울고 싶은 놈’이라는 위의 시 역시, 어쩌면 그런 배경 아래에서 쓰인 시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에 태어났던 많은 이들은 청년시절을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등등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실, 마음 속에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을 안고 살아가지 않았나 싶다.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은 정작 울지를 않고 내가 울어야 하는 삶! 거대역사가 가혹한 것은 한 인간이 개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이렇게 제한해 버리는 대목에 있다. 거대역사여, 캄캄해서 무섭다. 21세기는 좀 더 다른 세기였음 한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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