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사 측의 정리해고 강행을 하루 앞둔 이날 공장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뒤덮혔다. 입구는 컨테이너 4대와 바리케이드 등으로 철저히 봉쇄돼 있었다. 노조 측이 사 측의 대규모 정리해고 조치에 반발, 18일째 이른바 '옥쇄 파업'을 벌이면서 공장 전체가 '요새'를 방불케 했다.
빨간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헬멧을 쓴 조합원 20여명은 컨테이너 위에 만든 망루에서 쇠파이프로 바닥을 두드렸다. 대나무에 매단 붉은 깃발과 "설마 하면 다 죽는다"는 내용 등이 적힌 플래카드는 노조 측의 비장한 각오를 고스란히 담은 듯 했다.
■ 일촉즉발의 위기감
쌍용차 평택공장에는 전체 직원(7,135명)의 37%(2,646명)를 줄이는 사측의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는 노조원과 가족 등 1,000여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원들은 "이대로 당할수 만은 없다"는 태세였다. 쌍용차에서만 15년간 근무한 조립3팀 최모(39)씨의 부인 설모(37)씨는 벌써 17일째 이곳에서 아들(7), 딸(4)과 함께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설씨는 "10년 이상 다닌 직원을 벌레 밟듯이 해고통지서 달랑 보내고 나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설씨는 "월급이 90만원 정도 나왔으나 지난달엔 10원 한푼 못 받았다"며 사 측의 임금체불을 비난하기도 했다.
렉스턴 차체공장에는 조합원 수백 명이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아놓고 농성 중이었다. 평상시엔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으로 가득했을 공간은 간 곳 없었다.
15년 동안 용접공으로 일한 노모(40)씨는 "이스타나부터 코란도가 단종될 때까지 내 손을 거쳐간 차량만 해도 수십 만대"라며 "이런 공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멋대로 정리해고부터 단행한 사 측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생 딸 둘의 학원을 끊고 마이너스통장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는 노씨는 "아이들에게 노란봉투(해고통지서)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며 담배를 거푸 피워댔다.
입사 6년 만에 정리해고 명단에 오른 김모(37)씨는 "기가 찬다"고 했다. IMF 때인 1998년 전 직장인 M사에서 정리해고 된지 10년 만에 또 '악연'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최대 주주임에도 경영 부실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하이자동차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충돌시 참사 우려
페인트 시너 등 휘발성 물질로 가득한 도장공장은 화약고나 다를 바 없었다. 도장공장 외에도 유류고 변전실 등 위험시설이 도처에 널려 있어 경찰과 충돌 시 자칫 대형참사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노조원은 "(공권력과)충돌하면 희생자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 측 관계자는 "금속노조 등이 LPG가스통, 화염병, 고무총 등 시위용품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쌍용차 파업에는 민주노동당, 금속노조, 사회주의노동자 정당, 다함께 등 정당과 각종 단체도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반대' 등 파업과 무관한 글과 반정부 문구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도장공장 옆 70m가 넘는 굴뚝 위에는 김봉민(40)씨 등 노조간부 3명이 26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초등생 남매를 두고 있다는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바람이 불면 굴뚝이 흔들릴 정도라 음식 먹기조차 쉽지 않다"며 "빨리 사태가 해결돼 아이들을 안고 싶다"고 말했다.
■ 사측, "정리해고 불가피" 고수
사 측은 전 직원의 공멸을 막기 위해선 정리해고 외에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점거 파업을 풀면 정리해고 시행을 일단 유보하겠다는 방침도 노 측에 전달한 상태다. 이유일 쌍용차 법정관리인은 "채권단이 회생 절차의 전제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채무자 입장에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파업중인)조합원들이 철수한 뒤 생산을 재개해야 자금이 생기고 급여를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사 측은 파업이 계속되면 이달 말게 1,990억원 규모의 매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협력 업체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쌍용차 영업대리점, 부품대리점 등 관련업체 4,000여명은 5일 평택종합운동장에서 집회를 갖고 "파업반대, 정상조업 재개"를 촉구했으며, 일부는 공권력 투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평택=장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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