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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징계결의에… 쎈돌 "심신 피로, 1년 반 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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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징계결의에… 쎈돌 "심신 피로, 1년 반 쉬겠다"

입력
2009.06.0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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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의 간판 스타 이세돌과 한국기원의 대립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주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는 등 '튀는 행동'을 보여온 이세돌에게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한국기원 기사총회가 사실상 징계 결의를 하자 이번에는 이세돌 측에서 "앞으로 1년반 동안 기사직을 쉬겠다"고 맞받아쳤다.

이세돌의 형 이상훈(프로7단)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동생이 요즘 심신이 매우 피로한 상태다. 특히 기사총회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대국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요즘 컨디션도 엉망이다. 전혀 자신의 바둑을 두지 못하고 있다"며 운을 띄웠다. 1년반 정도 휴직을 생각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새 기분으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이어 "이미 휴직원 용지도 받아 왔다"며 "동생은 당장이라도 내겠다고 했지만 다음 주에 후지쯔배 8강전과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세계 기전 일정이 잡혀 있으므로 대외적인 문제를 고려해 이번 대회까지만 치르고 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이달 중순부터는 랭킹 1위 기사가 모든 국내 기전에 불참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전망이다. 물론 세계 대회서도 마찬가지로 이세돌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 승부에 전념할 수 없다

이세돌은 아직 휴직원을 내지 않았으므로 지난 3일 열린 물가정보배 본선 리그에 출전했다. 그렇지만 작년에 입단한 새내기 한웅규에게 완패했을 뿐더러 바둑 내용도 좋지 않았다.

특유의 날카로움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무딘 칼로 무리하게 상대를 요리하려다 번번히 실패했다. 마음 고생으로 승부에 전념할 수 없는 듯한 흔적이 역력했다.

올해 성적도 18승9패(승률 67%)로 다승 5위, 승률은 20위권 밖으로 내려갔다. 대국 후 이세돌에게 휴직원 제출 계획에 대해 묻자 "죄송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할께요. 안녕히 계세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요즘 바둑계는 온통 이세돌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인터넷에서도 이세돌의 '경솔함'을 꾸짖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세돌을 '쫓아낸' 한국기원과 프로 기사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소리도 높다.

심지어 노무련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과 비교하는 댓글도 있을 정도다. 한국기원은 갑작스런 휴직 발표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한상렬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서둘러 이상훈 7단을 만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재고를 요청했으나 특별한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기원으로서도 뾰족한 대처 방안이 없다. 이세돌의 휴직이 규정 위반도 아니고 오히려 정해진 절차에 따른 것이므로 휴직원을 내겠다면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기원 '소속 기사에 대한 내규'에 따르면 프로 기사가 '본원이 주최, 주관하는 각종의 바둑 대회에 6개월 이상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때' 휴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휴직이나 복직은 기원의 허가 사항이 아니라 신고 사항이다. 따라서 누구나 한동안 쉬고 싶으면 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또한 휴직기간 중 언제라도 본인이 원하면 복직이 가능하다. 오히려 휴직원을 내지 않고 무단히 대회에 나오지 않을 경우 징계를 당한다.

이는 원래 휴직 제도 자체가 해외 진출이나 개인 사정으로 공식 대회에 '장기 결석'하는 기사들에게 연구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도 큰 손실

이세돌이 계획대로 앞으로 1년 반 동안 휴직을 하게 될 경우, 개인적으로도 손해가 적지 않다. 우선 금전적인 손실이 엄청날 것 같다. 이세돌은 지난 해 국내외 기전에서 7억여 원을 벌었다.

최근 5년 평균 수입이 5억 정도 된다. 1년 반 동안 휴직할 경우 사실상 두 시즌을 공치게 되므로 거의 10억 가까운 수입이 날아가는 셈이다. 게다가 한 해 10판 정도 두기로 돼 있는 중국리그에 계속 출전할 수 있을 지도 아직 확실치 않다.

돈도 돈이지만 한창 절정기에 올라있는 이세돌에게 1년반의 휴직은 너무 긴 공백이다. 거의 군복무와 맞먹는다. 그동안 많은 바둑 신동들이 한창 뻗어나갈 때 군대에 갔다 온 뒤 대부분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세돌은 휴직 기간 중 도장에서 문하생들을 지도하고 기보 연구나 인터넷 대국을 통해 개인 훈련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승부사에게 가장 중요한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는 복귀 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년 중 예정돼 있는 각종 기전 대국이 모두 기권패 처리되므로 20개월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랭킹도 크게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어린 후배들이 치고 올 것까지 감안하면 자칫 세계 정상급 기사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는 대모험이다.

■ 각종 기전 파행 운영 불가피

바둑계는 더 큰 타격이다. 이세돌이 현재 명인과 국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고 거의 모든 국내 기전 본선에 올라 있으므로 앞으로 기전 운영이 파행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당장 현재 예선이 진행 중인 국수전부터 문제다.

이세돌이 타이틀 보유자이기 때문에 휴직을 할 경우 도전기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0여년간 유지됐던 국수전 도전기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한국기원 실무자들도 유례없는 돌발 사태라 어떤 식으로 기전을 꾸려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본선 토너먼트 우승자가 바로 새 국수가 될 지, 아니면 상위 2명이 결승전을 벌일 지 주최사와 추후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손실이나 기전 운영의 어려움은 어쩌면 지엽 말단적인 이야기다. 한국 최고 기사이자 세계 바둑계 톱스타가 앞으로 거의 모든 기전에서 1년 여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 자체가 바둑계로서는 엄청난 손실이다. 중국이나 일본 바둑팬들도 벌써부터 사태 추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창호와 이세돌은 국내 바둑계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다. 바둑팬의 대부분이 이 두 사람의 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바둑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바둑 인구가 줄어들어 걱정인데 간판 스타 이세돌의 부재와 그에 따른 여론 악화 등은 더 할 수 없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바둑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가 실추되고 팬들이 바둑을 외면하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할 우려도 없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게 된 데는 한국기원도 한 몫을 했다. 이세돌이 올해 바둑리그에 불참할 지 모른다는 소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바둑가에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런데도 이를 철저히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터진 후에야 허둥지둥했다. 사후 처리 방식도 너무 거칠었다.

바둑리그 불참을 비롯, 이세돌의 튀는 행동이 기원측으로서는 눈에 거슬리고 괘씸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딱히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어서 징계 대상으로 삼기에는 애당초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기원 주변 분위기는 마치 이세돌을 바둑계 발전을 저해하는 '공공의 적' 쯤으로 몰아가더니 곧 이어 '이사회 발 징계 불가피론'이 유포되면서 급기야 기사총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표결로 징계를 결의한 것이다. 얼마전 모 선배 기사가 이른바 '바둑판 소송'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 취했던 '조용한' 처리 방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 한국기원-이세돌, 서로 화해의 악수 건네야

해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세돌이 정식으로 휴직원을 낸 것은 아니므로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지금이라도 이세돌과 한국기원 양측 당사자가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가슴을 열고 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둑팬들 앞에서 화해의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세돌도 살고, 한국기원도 살고, 한국 바둑도 산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양측 모두 기존 입장을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 한상렬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현재 상황에서 기원으로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며 "얼마 전 이상훈에게 기원 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재고를 요청한바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과 언제라도 대화할 용의가 있으나 만나주지 않는 상태에서 아직 휴직원이 제출된 상황이 아니어서 뭐라 말할 수 없으나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있다는 취지다. 이상훈 7단은 "기원 측과 무슨 타협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기원에서는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먼저 사과하라 하는데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시상식 불참이 주로 거론되는데 몇 년전 바둑리그 시상식 때 한 번 못 나간 것 이외에는 안 나간 적이 없다"고 양해했다. 그는 "나머지 사항들은 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라며 "그저 한동안 쉬고 싶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책임 있는 중재자가 필요한 데 현재 바둑계에서는 마땅한 중재자가 없는 형편이다. 최근 거의 유일하게 한국기원과 이세돌 양측을 모두 접촉해 중재에 나섰던 차만태 전국바둑연합회장((주)킹스필드 회장)은 "이세돌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워낙 커서 단시일 내에 사태가 호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뭔가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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