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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제왕적 대통령'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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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제왕적 대통령'의 비극

입력
2009.06.08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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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산 중턱 높은 곳에 신라의 고찰 수종사(水鍾寺)가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트인 앞으로는 아름다운 산과 강이 펼쳐 있는 곳이라, 옛날 수로로 배가 다닐 때는 명소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역대로 많은 묵객들과 명사들의 발 길이 종소리 같은 물소리를 따라 끊이지 않았다.

이곳은 또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마재에서 가까운 곳이라 다산이 유년시절에 뛰놀고 장년기에는 청운의 꿈을 키우며 자주 올라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정조 7년(1783)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휘영청 밝은 달밤에 출사한 벗들과 이곳에 올라 회포를 풀며 조선의 미래를 기약하였다.

권력ㆍ 돈 독식하는 병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 어릴 때 놀고 젊은 시절 큰 꿈을 키우며 공부했던 고향 마을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있어서는 안 될 참혹한 변일 뿐 아니라,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으로서 했어도 안 될 행위였다. 두 경우 모두 꿈을 키우던 바위산이었건만 서로 다른 장면을 보여 준다.

노 전 대통령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시간이 가면서 많은 논의들이 나오겠지만, 국가적 불행을 겪은 우리로서는 죽음을 놓고 정치적인 저울질을 하는 정상배들과는 달리 생각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런 사태를 불러온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박연차 사건에서 보듯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권력에 접근하고 대통령제의 권력 핵심부에 거액을 제공하며 안하무인으로 설치게 된 것도 모두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으로 말미암는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법적으로는 대통령을 통제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통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수천 개의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마음대로 사람을 배치할 뿐 아니라 국책 사업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거액의 돈을 배정한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출신지역에서는 온갖 명목을 붙여 큰 돈을 받아 갔다. 이런 마당에 돈을 벌려는 기업이나 사업가는 항상 권력에 줄을 대려고 할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액의 돈을 권력 핵심부에 제공하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 축하금'이라는 명목의 불법자금 제공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로 인하여 권력은 부패하고, 대통령의 권한은 남용되고 오용된다. 권력 주변에서 완장을 하나씩 꿰어 찬 인간들은 불나방처럼 제 죽을 줄 모르고 권력에 날아든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로 인하여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세력의 관심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퇴임 대통령의 '사후 보장'에 있다. 차기 정부가 자기들의 비리와 불법을 파헤치지 않을 경우를 만들어내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정치권 거래와 투쟁의 근본배경도 여기에 있다. 만일 이런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에는 차기 정부는 항상 지난 정부의 비리와 부패를 파헤치는 일을 한다. 이런 악순환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가 계속 보아온 바와 같다.

권력구조 바꾸는 개헌을

문제는 이런 일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못 받아도 대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승자가 돈과 권력을 모두 독식하는 것이 한국 대통령제이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자는 통곡을 하고, 다시 5년 후의 도박에 목을 매는 것이다. 다음 한 판만 잘하면 모두 가진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확실하게 줄이고, 국가 권력이 모두 권력통제의 메커니즘 속에서 행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권력구조를 대통령제에서 이원정부제나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개헌이 있다. 이번에는 개헌 논의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보았으면 한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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