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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 청년 박열과 日 여성 후미코 '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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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 청년 박열과 日 여성 후미코 '열애'

입력
2009.06.0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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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지음/문학의 문학 발행ㆍ320쪽ㆍ1만1,000원

"산다는 것이 단지 숨이 붙은 채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거야. 그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278쪽)

1923년 봄 일본 도쿄에서 한 부부가 경찰에 체포됐다. '불령사(不逞社)'라는 아나키스트 조직의 일원이었던 이 부부가 일본 천황을 폭사시키려는 모의를 했다는 것. 천황이 곧 국체(國體)였던 당시 '대역죄'에 해당하는 이들의 죄목도 죄목이지만, 일본 여성과 함께 조선 남성이 범행을 공모했다는 사실은 식민 지배자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비운의 왕인 단종의 비로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정순왕후, 왜장을 안고 투신한 논개, 총탄에 쓰러진 민족지도자 백범 등 비극적 삶을 살아간 역사인물들에 대한 소설화작업에 몰두해온 김별아(40)씨가 이번에는 조선청년 박열(1902~1974)과 일본여성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불꽃 같은 사랑을 소설로 그려냈다.

소설은 1920년대 도쿄 사회주의자들의 단골 오뎅집 종업원이었던 후미코가 허름한 입성이지만 두 눈빛만은 형형했던 청년 박열과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유교관습에 대한 반항심과 식민지 피지배자로서의 울분을 결연하게 행동으로 옮긴 박열의 치열한 내면도 잘 그려져 있지만 가족으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동지들로부터도 버림받았던 여성 후미코의 신산스런 삶에 대한 묘사는 강한 흡입력이 있다.

처제와의 불륜으로 자식을 버리고 달아난 아버지, 생활비 몇 푼을 벌기 위해 딸을 매음굴에 팔아 넘기려는 어머니, 고독함에 지쳐 타인의 체온에 몸을 맡기면 자신의 몸뚱이만을 탐하며 덤벼들던 사내들…. 박열이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후미코의 삶에 대해 작가는 "불행의 산을 넘으면 그보다 더 높고 험한 불행의 산이 버티"고 있었던 삶이라고 적는다. 무엇보다도 후미코를 진정한 해방의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부정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로 복원해낸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다.

사형 판결을 받고도 재판장을 향해 "내 육체야 자네들 마음대로 죽이려거든 죽여라. 그러나 나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느냐?"고 태연히 반문하던 박열, 수감 도중 천황의 특사로 감형됐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통지서를 찢어버리고 옥중에서 자살해버린 후미코 등 그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이 감동적으로 복원된다. '고독은 소리 없이 절로 높아지는 만조의 바다와 같다.

파도들이 흰 깃을 치며 외로워, 외로워 물밀려들었다', '피의 꽃이 폈다. 붉은 흙이 뜨겁게 물들였다'와 같이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문장들은 소설적 흥미를 더한다.

작가는 "이들은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니체의 명령에 가장 충실했던 인물"이라며 "이 소설은 그들의 뜨거웠던 삶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역사소설 집필작업이 혹시 매너리즘에 빠뜨리지 않겠는냐는 걱정에 대해 김씨는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내가 만든 언덕은 내가 넘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재 작가는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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