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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장편소설 '성탄 피크닉' 발표한 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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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장편소설 '성탄 피크닉' 발표한 이홍

입력
2009.06.08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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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문화들이 공존하는 동시에 충돌하는 그 경계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단순히 특정계층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서식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류계급의 소비취향과 왜곡된 욕망, 분열적 심리세계를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작가 이홍(31)씨가 등단작 <걸 프렌즈> (2007) 이후 두번째 장편소설을 선보였다.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발표한 그의 650매짜리 장편소설 '성탄 피크닉'에는 비난과 선망이라는 모순된 시선으로 상류계급을 바라보는 비상류계급의 내면 풍경이 형상화돼 있다.

소설의 무대는 성탄절 무렵의 압구정동 고급 아파트. 주인공은 로또에 당첨돼 4년 전 성남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세 남매다. 우발적 살인사건에 휘말려 파국으로 달려가는 세 남매의 4일 간의 일상이 긴박하게 그려진다.

'로또, 압구정동, 크리스마스' 라는 3가지 소설적 장치가 상징하듯 작가는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개인의 욕망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내파(內破)되는 지점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로또 1등에 당첨돼 뒷자리에 0이 10개나 붙는 당첨금을 받고 압구정동으로 편입된 세 남매가 경험하는 상류층의 세계는 별천지다.

양주파티와 골프로 친목을 다지는 대학생 사교클럽, 일찌감치 외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중학생 딸에게 안면윤곽 성형을 시키는 부모들, 할인가격이라고 한 벌에 30만원이 넘는 명품 옷을 열 벌씩 사면서 "한 벌 값으로 열 벌이나 샀어!"라며 흡족해 하는 젊은 여성 등 물질주의와 외모지상주의로 상징되는 상류계급의 속물성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주인공들은 비록 상류계급의 물리적 공간으로 이동했지만 결코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 "인생은 형편이 달라진다고 바뀌는게 아니었다"는 이들의 냉소적인 독백은 이내 '일탈' 혹은 '속물화'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선생과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외로움을 옆집 유부녀와의 은밀한 관계로 보상 받으려는 막내 은재, 원조교제를 통해 쇼핑 비용을 마련하는 둘째 은비는 문제아 고교생들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모범생으로 자수성가할 꿈을 품은 건전한 중산층이었던 첫째 은영도 취직이 안되자 실력 대신 부유한 남자친구의 연줄을 이용해 직장을 얻기로 마음을 바꾼다. 4년 전 로또 당첨과 함께 그들이 '곧 허물어질 계획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스며들어' 간 것처럼, 욕망의 끝은 진창일 뿐이다.

이씨의 소설에 녹아있는,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 보면서도 그 지독함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이중심리'(문학평론가 김미현)는 피상적인 연애와 명품 이야기로 도배돼 있는 통속적 '칙릿'과의 차별점이다.

"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도 잘 믿지 못한다. 실질적 만남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취재한다"는 결벽증적인 취재력을 바탕으로, 낸시 곤잘레스 악어백에서 람보르기니 승용차에 이르는 상류사회의 문화ㆍ소비취향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디테일 묘사는 소설 읽기의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설이란 본디 인간에 대한 질문이고 내 안의 질문이 타인의 눈빛과 육성에 가까스로 융화됐을 때 비로소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 이씨는 "정체되지 않은 소설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탄 피크닉'은 곧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이씨는 강남 유학생들의 세태를 그린 또다른 장편소설도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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