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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검사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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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검사의 DNA

입력
2009.06.08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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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검찰 간부 인사 직후 신임 대검 중수부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책상 등 가구 배치가 전임자 때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분위기 전환 차원"이라고 했다. 한 쪽 벽에는 중국 음식점에서나 볼 법한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중수부 상징을 호랑이로 정했느냐"며 핀잔과 농을 섞어 추궁(?)하자 사연을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역술가가 "대검 청사와 중수부장은 워낙 기(氣)가 센 자리라 호랑이로 누르지 않으면 화를 입을 수 있다"며 줬다는 것이다. 가구의 향(向)과 위치를 바꾼 것도 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언뜻 듣기에 웃음이 날 만한 일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 내 최고 사정 부서다. 중수부장은 검사장급 4대 요직 중 하나다. 역대 36명의 검찰총장 중 7명이 중수부장 출신이다. 그런 중수부장이 역술가 말을 듣다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말에 중수부장이 부산을 떨며 부화뇌동했을 모습이 경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서슬 퍼런 검사 역시 나약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의 이름으로 부패ㆍ비리 범죄자를 단죄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그로 인한 심적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기간 중 재직 시절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인사를 만났다. 그는 "큰 수사가 시작되면 검사는 집요하게 실체 규명에 매달린다. 사건만 생각한다. 정치적 고려 같은 것은 후순위도 한참 후순위"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검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DNA"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검사가 매번 비리 단죄의 성취와 보람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는 일을 하다 보면 달갑지 않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중수부장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손에 피 묻힐 일을 생각하니 끔찍하지 않았겠냐"고 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퇴하자 대검 중수부장 등 박연차 게이트 수사팀 거취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교체와 경질 등 인사 조치가 거론되고, 중수부 폐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야당은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팀을 고발했다. 그러나 과오를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수사팀을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 정권의 하수인쯤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방식ㆍ기법의 적절성 등을 살펴본 뒤 인책을 논해도 늦지 않다. 그들은 지금 꿈에서조차 피하고 싶던 일이 현실화한 데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 그것을 검사의 DNA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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