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을 찾은 아부다비 투자사절단은 우리나라 각 경제 부처 및 금융권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운용자산이 무려 9,000억달러(약 1,1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 투자청(ADIA)을 비롯, 아부다비 투자위원회(ADIC) 등 총 17개 기관 20여명의 대규모 사절단이 방한했으니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금융권은 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쌍용자동차 등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 따른 자금난으로 지연되고 있는 국내 구조조정 기업에 유치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구조조정으로의 초대
산업은행은 아부다비 투자사절단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대우조선해양 등 매각대상 기업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올스톱된 민영화 작업에 '오일 머니'를 끌어들여 값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구조조정 매물은 국내 기업만을 상대로 해서는 소화가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산은은 또 상암 DMC 랜드마크 빌딩 개발사업, 제2영동고속도로 건설사업 등 현재 진행 중인 지역개발 및 인프라 투자사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울러 신성장동력펀드 및 기업구조조정 펀드(PEF) 등 산은이 결성 추진중인 펀드에 대한 지분 참여도 요청했는데, PEF의 목표수익률을 연 15~20%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지주도 5일 투자설명회를 겸한 만찬회를 열고 현대건설, 대우조선 등 구조조정 기업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ADIC는 방한 마지막 날인 5일 산업은행, KOTRA와 3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으며,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투자유치를 위해 7~10일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산은 관계자는 7일 "민 행장의 이번 방문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긍정적 결과를 기대했다.
영미권 자금 보다 더 낫다
그 동안 국내에 직접 투자하기 보다는 홍콩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일부 유입됐던 오일머니가 국내 구조조정 기업에 투입될 새로운 자금원으로 떠오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 동안 큰손 역할을 했던 영미권 금융기관이나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이 자금력을 잃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점. 둘째는 확정이자 상품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슬람 금융의 특성 때문이다.
샤리아는 투자자가 단순히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거나 확정금리 채권을 사 이자를 수취하는 행위를 불로소득으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다. 대신 금리를 확정하지 않고 직접 투자한 뒤 나중에 수익을 공동으로 나누는 방식은 인정한다. 이와 함께 국부펀드의 목적은 외환보유고 관리이므로 단기보다는 장기 투자를 선호한다는 것도 기업 구조조정 펀드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ADIA와 아부다비의 석유재벌들은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벤츠,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영국 은행 바클레이즈 등에 투자한 데 이어 오펠 등 GM의 유럽 자회사에 대한 인수도 타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영미계 금융회사들이 힘을 잃고 전세계에 싼 구조조정 매출이 속출하는 지금이 오일머니에는 장기 투자를 위한 최대 '기회'인 셈이다.
■ 국부펀드
외환보유고를 운용, 관리하기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펀드다.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국부펀드의 상당수는 중동 국가들에 몰려 있다. 원유를 팔아 모은 외환 관리를 위해 일찌감치 국부펀드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운용자산 규모는 공개돼 있지 않지만, 6,000억~9,0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ADIA가 세계 최대로 인정 받는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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