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이자 아프리카 전문가인 스페인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44)의 <콩고의 판도라> (들녘 발행)는 소설은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일종의 실험소설이다. 콩고의>
들녘출판사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권 위주의 좁은 세계문학에서 벗어나 페루, 스웨덴, 스페인 등 다양한 지역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발간하고 있는 '일루저니스트' 시리즈의 열네번째 작품이다.
배경은 20세기초 영국. 주인공은 고아원에서 자란 열아홉 살 가난한 청년으로 유명 작가의 소설을 대신 집필해 생계를 연명하는 '노예작가' 토머스 톰슨이다. 평범하던 톰슨의 운명은 젊고 야심만만한 변호사 노튼의 수상한 부탁을 받으며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노튼의 부탁은 아프리카에서 영국 귀족의 자제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마커스 가비라는 의뢰인의 체험을 소설로 써달라는 것이다. 톰슨이 들려주는 가비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제목처럼 모든 것이 튀어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다. 관습은 파괴되고 장르는 뒤섞인다.
가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늘날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인들의 생활상을 묘파한 리얼리즘 소설이기도 하고,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찾아가는 유럽인들의 모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모험소설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느닷없는 괴물들의 출현과 땅속 지하세계로의 여정은 판타지 혹은 '스릴러의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비의 법정공방은 잘 만들어진 법정소설로 읽히게도 한다.
이뿐인가, 소설 속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문학적 논쟁은 메타소설의 요소도 갖추고 있다. 식민지주의, 유럽의 인종차별주의, 말초적 흥미를 좇는 언론, 부패한 법정, 대중선동과 조작 등에 대한 다양한 풍자도 이 소설의 육체를 풍성하게 만든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무인도를 무대로 바다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묘사한 처녀작 <차가운 피부> (2002)로 스페인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피뇰은 이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적 유럽작가로 떠올랐다. 2005년작. 차가운>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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