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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슈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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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슈퍼노트

입력
2009.06.0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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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의 정교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마이크로 렌즈로 진짜 지폐를 찍어 필름으로 동판을 뜬 뒤 정밀한 스위스제 요판(凹版) 인쇄기로 찍어낸다고 한다. 잉크와 종이도 미 조폐국에 납품되는 특수제품들이 사용된다. 웬만한 위폐감식기로는 감별이 어렵고, 적외선감별기나 특수확대경으로만 감식이 가능하다. 미국은 위조 방지를 위해 눈에 띄지 않는 동영상 칩을 지폐에 부착하는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그러나 위폐범들은 적외선에 비춰야 드러나는 숨은 그림까지 완벽하게 복제하는 등 위조방지 기술까지 곧 따라 잡을 정도로 지능적이다.

▦ 1989년 필리핀 마닐라 센트럴뱅크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슈퍼노트는 연평균 280만 달러 상당이 적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슈퍼노트 제작에 사용되는 장비와 재료, 기술 등에 비춰 개인이나 범죄집단의 소행으로 보기는 어렵고 국가의 개입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 미국은 이란 시리아 구동독에 혐의를 두었다. 특히 동베를린 지역에서 슈퍼노트가 다량 적발돼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에 의심이 쏠렸다. 그러나 독일 통일 뒤 독일경찰이 미 재무부 직원과 함께 슈타지 건물을 수색했으나 문제의 인쇄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 그래서 미국이 새로 지목한 나라가 북한이다. 슈퍼노트를 소지하고 있거나 사용하려다 적발된 북한 외교관 등 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2005년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함정수사로 북한인이 포함된 슈퍼노트 반입 조직이 2건 적발됐다. '로열 참' '스모킹 드래곤' 작전으로 불린 이 함정수사 결과는 대북 금융제재로 이어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의 단초였다. 2006년 2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등은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인사로부터 구입했다는 슈퍼노트를 제시하며 평양의 특정 건물을 슈퍼노트 제작 공장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 그러나 북한이 슈퍼노트 유통 및 사용에 관련된 사례는 많지만 직접 제작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독일 보수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의 경제전문기자 출신인 클라스 벤더는 <위폐의 비밀> 이라는 책에서 북한의 혐의를 일축했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 최신호(8일자)는 부시행정부 때 위조지폐문제를 조사했던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중국의 전직 군인사들에 의해 중국에서 제작됐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2일 북한정권의 실세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일가가 슈퍼노트 제조의 핵심이라는 미 보수적 일간지 워싱턴타임스 보도는 무엇일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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