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의 전시장 '팔라조 제노비아'. 지중해의 햇살이 뜨거운 야외 정원에 '앞으로' '반달' 등 한국 동요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에게 "Who are you?"(당신은 누구죠?)라고 묻고 다니는 여자, 계단 하나를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남자,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여자(이주향 수원대 교수)까지.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빨간 천이 둘러진 10m 높이의 리프트 위에 검정색 옷을 입은 사진작가 김아타(53)씨가 섰다. 잠깐의 침묵. 그는 손에 든 종이를 한 장씩 땅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도시별로 1만 컷의 사진을 찍어 하나로 합치는 그의 '인달라' 시리즈 중 로마에서 촬영한 사진을 5X7인치 크기 한지에 프린트한 것들이다. 그의 손을 떠난 1만장의 사진은 베니스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김씨가 독특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개인전 오프닝을 알린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 및 국가관 전시와 별도로 시내 곳곳에서 비엔날레와 연계된 특별전이 열린다. 김씨의 개인전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이사회가 승인한 44개의 특별전 중 하나로, 2년 전 52회 비엔날레 때는 이우환씨가 같은 케이스로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
김씨는 "오랫동안 해온 작업들을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면서 "1만장이 모여 하나가 됐던 로마의 사진을 다시 1만개로 해체해 땅으로 돌려보낸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초월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시장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온에어 프로젝트'로 꾸며졌다. 인달라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컷에 8시간의 노출을 준 '도시' 시리즈, 얼음으로 조각한 마오쩌둥의 초상이 108잔의 물이 되는 과정을 찍은 '얼음의 독백' 시리즈 등 22점의 사진이 걸렸다.
동양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사진으로 각광받고 있는 김씨는 2006년 뉴욕 세계사진센터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 독일의 유명 미술전문 출판사 하체칸츠에서 작품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씨는 "얼음 조각으로 만든 파르테논 신전이 녹는 모습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날 김아타씨의 전시장에는 영화배우 김혜수씨가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카메라에 퍼포먼스 장면을 꼼꼼히 담은 김씨는 "2년 전 우연히 김아타씨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인연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베니스=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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