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왕국인 한국, 일본, 대만. '꽃보다 남자'처럼 세 나라 중 한 곳에서 히트한 드라마가 다른 나라 버전으로 리메이크되거나 수출되는 일은 예사가 됐다. 인기 드라마들을 만드는 작가들은 과연 다른 나라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히트 비결을 갖고 있을까.
3~6일 제4회 아시아방송작가콘퍼런스(서울시·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공동 주최)에 참가한 3국 작가들이 5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나 서로의 드라마에 대한 생각과 전망을 털어놓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등으로 마니아 시청자층을 보유한 노희경(43), 대만판 '꽃보다 남자'인 '유성화원(流星花園)'을 비롯해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는 경쾌한 청춘물로 인기가 높은 치시린(齊錫麟ㆍ49), 김희선이 출연했던 드라마 '요조숙녀'의 원작 '야마토 나데시코' 등 직장여성의 애환을 그려 히트 제조기로 불리는 일본의 나카조노 미호(中園ミホㆍ50)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이웃 나라의 인기 드라마의 영향이 자국 드라마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노희경은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에 한류를 일으킨 선두 주자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트렌디한 일본 드라마 등) 다른 나라 드라마를 모방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쉽다.
사극처럼 우리나라 정서가 있는 것을 발굴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50회, 100회까지 이어지는 장기 드라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징"이라며 최근 대하 드라마의 축소를 아쉬워했다.
나카조노 역시 "시청률에만 신경쓰느라 대만 드라마를 따라 아이돌 스타를 출연시키는 등 상업성에만 치중하고 노 작가의 작품처럼 인간 내면을 다룬 진지한 작품이 없어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스폰서가 줄고 일본 드라마의 강점이었던 여유있는 예산과 제작기간을 갖추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작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덧붙였다.
나카조노가 언급한 대만류의 원조랄 수 있는 치시린조차 "상업적 드라마만 만들다 보니 내용이 단순하고 유치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아이돌 위주의 청춘물 일색이었던 대만에 최근에는 허구적인 부잣집 아들 대신 현실적인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며 변화하고 있다고 치시린은 덧붙였다.
작가들 스스로 밝힌 히트 비결은 무엇일까. 나카조노는 "일본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만 담아두는 것이 일반적 정서이고, 여자들은 더 심한데 '파견의 품격' 등에서 파견 사원의 고충을 대변하며 애환을 속시원히 표출한 것이 인기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약 1년간 직장을 다닐 때 일 못하는 사원으로서 느꼈던 고충이 담겼을 것"이라며 웃었다. 인생경험이 인기의 바탕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노희경 역시 "직장경험을 6, 7년 했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인생경험이 작품에 풍성하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기 드라마의 요소는 남녀간 사랑과 인간미라고 작가들은 꼽았다. 치시린은 "문화와 배경이 다르지만 인기 드라마들에는 공통적으로 인간미가 살아있다.
표현 방법은 나라마다 달라도 인간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카조노 역시 "형사물이든 학원물이든 사랑을 다룬 드라마들은 확실히 공감한다"고 동의했다.
한편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에 대해 노희경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독해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예전 우리 정서는 한을 품고 죽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섭고 극악하게 모든 것을 표출하고 만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보기 힘든 트렌드다."
그래도 외국의 작가들이 탐내는 배우들은 많았다. 나카조노 작가는 "일본 남자들에게 보기 힘든 남자다움을 갖춘 이병헌"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킨 이지아"를 쓰고 싶은 배우로 꼽았고, 치시린은 역시 아이돌 스타를 즐겨 기용한 작가답게 "대만에서도 방영된 '풀하우스'로 인기있는 송혜교와 비"를 꼽았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