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전(前) 왕세자빈 다이애너(당시 36세)가 연인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파리 알마교(橋) 터널 입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나는 사고 지점에서 채 2km도 안 떨어진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흥분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다이애너가 죽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켰다. TF1에서도 프랑스2에서도 온통 다이애너 사망 소식이었다. 그러나 명정 상태의 내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가운데 하나일 사람이, 내가 사는 도시에서 죽었다고? 이튿날이 돼서야, 텔레비전 뉴스와 조간신문을 통해, 나는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최근 노무현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보다 젊었으니까.
다이애너 커플이 타고 있던 검은색 1994 메르세데스-벤츠 S280을 몰았던 이는 파리 리츠 호텔(도디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소유였다)의 임시 보안매니저 앙리 폴이었다. 그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더구나 이 차는 파파라치에 쫓기고 있었다('파파라치'란 알다시피 저명인사의 사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아 언론사에다 비싼 값에 파는 프리랜스 사진기자들을 말한다. 유럽 언론에서는 흔히 쓰여 왔던 말이지만, 내 기억이 옳다면 한국 언론에서는 다이애너 사망 사건을 계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이탈리아어 단어는 복수 형태고, 그 남성 단수는 '파파라초'다).
앙리 폴은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과속 운전을 했고, 취기가 운동실조를 초래해 터널의 열세 번째 기둥에 차들 들이받고 말았다. 차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9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다이애너의 영결식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25억 이상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본 것으로 추산됐다. 영결식에선 가수 엘튼 존이 '바람 속의 촛불 1997'을 불렀다. 그가 본디 마릴린 먼로에게 헌정했던 노래 '바람 속의 촛불'의 가사를 바꾸고 편곡한 리메이크곡이었다.
저명인사들이 파리에서 죽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적 문화적 중심 도시에서는 이방 출신의 저명인사들이 흔히 삶을 마감한다.
뒷날 저명인사가 될 사람들이 이 도시들에서 태어날 확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저명해지면 그 도시들을 활동 공간으로 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도 수많은 이방 출신의 저명인사들이 죽었고, 다이애너는 그 해 그 날 그 숫자를 하나 늘렸을 뿐이다.
다이애너 스펜서의 짧은 삶은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 삶이 행복보다는 훨씬 많은 불행으로 채워지므로, 다이애너의 삶이 특별났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녀는 영국 세자빈이라는 특별한 신분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비록 실제의 삶은 그 동화적 상상력과 동떨어져 있었지만.
영국 왕세자 찰스 윈저와 유치원 보모 다이애너 스펜서의 만남은 차라리 없었던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 찰스는 젊어서부터 수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문을 뿌린 바람둥이였다.
특히 뒷날 재혼하게 되는 카밀라 파커-볼스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서른이 넘어서 가족과 각료들로부터 결혼 압력을 받게 된 찰스는 제 아내로 저보다 열세 살이 어린 다이애너 스펜서를 골랐다.
공식 약혼이 이뤄진 것은 1981년 2월 24일이었고, 세인트 폴 성당에서 결혼식이 거행된 것은 그 해 7월 29일이었다. 언론은 그 결혼을 '동화적 결혼'이라고 불렀다. 그 때 다이애너는 스무 살 처녀였다. 그들은 1996년 8월 28일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15년 남짓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 속사정이 즉시 세간에 알려진 것도 아니다. 윌리엄과 헨리(해리) 두 형제를 낳았을 때, 다이애너가 언젠가 영국의 왕비가 되고 대비가 되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남편 찰스와 두 아들이 영국 왕위 계승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애너는 자상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그녀는 되도록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모정을 흠뻑 주었다. 남편에게도 충실했다.
그러나 찰스 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좋은 아빠였는지는 몰라도 좋은 남편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그녀는 여느 남편이 아내를 대하듯 다정하게 다이애너를 대하지 않았고, 결혼 전 알던 여자들과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결혼 전의 깊은 연인이었던 카밀라 파커-볼스와는 노골적으로 연애를 재개했다. 찰스의 파트너가 다이애너인지 카밀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과의 이혼에 카밀라의 존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을 뒷날 BBC에서 받고, 다이애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결혼생활은 세 사람이 이어가고 있었죠. 그래서 좀 붐볐다고 할 수 있었죠."
파경의 책임이 오로지 찰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의 사랑을 그리도 원했건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다이애너도 맞바람을 피웠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자신들의 외도를 털어놓았고, 그것은 영국인들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되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2세가 나서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혼을 종용했고, 그들은 여왕의 뜻을 따라 헤어졌다.
영국 궁중법상 왕세자와의 이혼으로 다이애너는 왕가(로열 패밀리)에서 떨려나야 했으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왕위 계승 순위자의 어머니라는 점이 고려돼 그 일원으로 남게 되었다. 다이애너는 켄싱턴궁의 한 아파트를 개수해서 자유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기까지의 삶에서 다이애너가 특별히 존경받을 만한 점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이혼녀로 남지 않았다. 그녀는 중년 이후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뛰어든 것이 에이즈 퇴치운동과 대인지뢰 제거운동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에이즈와 대인지뢰는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에 속했다. 이 적과의 싸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가 뛰어든 것은 이 일에 매달려있던 동료들을 크게 격려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듯, 다이애너는 이 운동에도 헌신적이었다.
유엔과 영국 정부도 다이애너의 활동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녀는 또 적십자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녀는 마치 속세로 나온 테레사 수녀 같았다. 나는 아마 다음 주에 테레사 수녀에 대해 얘기할 텐데, 그녀가 다이애너와 같은 주에 선종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러나 다이애너는 테레사 수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속인이었고, 그래서 남편에게 받지 못한 속세의 사랑이 필요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출신의 저명한 심장외과 의사 하스낫 칸과 공개적으로 두 해 동안 연애했다.
다이애너는 칸 박사를 과감히 '내 인생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적 차이'로 결국 헤어졌다. 사실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다이애너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녀가 그 다음에 사귄 남자가 이집트 출신의 영화제작자 도디 알 파예드였으니 말이다. 다이애너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이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 결혼이 이뤄졌다면, 그것은 재클린 케네디와 오나시스의 결혼보다 훨씬 더 큰 뉴스였을 것이다. 재클린과 오나시스의 결혼은 그래도 기독교권 사람들끼리의 결혼이었으나, 다이애너와 도디 알 파예드의 결혼은 종교를 뛰어넘은 결혼이 됐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여자는 영국 왕위계승자의 어머니였다.
이 두 사람의 죽음에 음모설이 따라붙은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왕위계승자의 어머니가 이집트 출신 사업가와 결혼하는 것이 영국인들에게 달가울 수는 없었을 게다. 음모설은 두 사람의 사망 직후부터 나왔으나, 정식으로 제기된 것은 1999년 2월 도디의 부친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는 MI6(영화 007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 정보기관)가 프랑스 정보기관, 경찰, 의료기관 등과 공모해서 두 사람을 죽였고, 이 음모에는 엘리자베스2세의 남편 프린스 필립,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와 외무장관 로빈 쿡, 찰스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얼마 앞두고 생긴 사고이니만큼, 이런 음모설이 그럴 듯하게 먹혀들기도 했다. 그래서 사건의 면밀한 재수사가 이뤄졌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와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술 취한 운전자 앙리 폴이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 생긴 사고라는 것이다. 사건 직후 발표와 차이가 없다.
진실은 하느님만이 알 것이다. 아무튼 다이애너 스펜서-도디 알 파예드 부부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섞인 것은 아름다우므로.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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