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 지음/창비 발행·268쪽·9,000원
"내가 대체 뭘 훔쳤단 말야, 멀쩡한 사람을…." "뭘 훔쳐? 고구마 말이다, 고구마." (중략)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딱딱하게 눌은밥, 눌은밥 한 덩이였다. 묻지 않아도 수만이 어머니가 남의 집 부엌일을 해주고 얻어 온 것이리라. 수만이는 무한 남부끄러움에 취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섰다. 그러나 그 수만이보다 갑절 부끄럽기는 인환이였다. 아이들이었다.(이상 '고구마')
가난한 시절 아이들은 어른스럽다. 풍요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자존심, 유혹과 양심, 우정과 명예를 안다. 1930~40년대 열 두어 살 아이들의 세계를 다룬 현덕(1909~?·1950년 월북)의 소설은 아이와 어른의 세상이 공존하는 그들의 욕망과 갈등과 성숙을 그린다. 현덕 전문가인 엮은이 원종찬씨는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겪음직한 일을 그리고 있는 현덕은 오늘날에도 불모지인 양 텅 비워져 있는 소년소설의 개척자로 주목할 만하다"고 평한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에는 월북작가인 탓에 널리 읽히지 않았던 현덕의 단편 12편이 담겨있다. 1부 9편은 <집을 나간 소년> (1946)에 발표됐던 소년소설로 중학교에 간 숙자와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는 명자의 우정을 그린 '잃었던 우정', 잘못 계산된 거스름돈을 쓰다가 양심에 괴로워하는 소년의 심리를 묘사한 '하늘은 맑건만' 등이 포함된다. 집을> 나비를>
47년 발간된 <남생이> 에서 '노마'가 등장하는 연작 단편 3편을 모은 2부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노마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빈한한 세상살이에 대한 묘사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다. 38년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인 '남생이'는 당시 "현 문단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남생이>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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