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영(39)씨의 첫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실천문학 발행)은 귀로 쓰는 서정의 시편들로 가득하다. 오감 중에서도 시각이 중심에 놓이는 시각 만능의 시대에, 그는 귀를 열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도시의 지붕 밑에서 반쯤 얼굴을 내민 하늘을,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볼 때도 이런 식이다. 삐비꽃이>
'처마부터 시작된 하늘 가득/ 어깨가 닿을 듯 소란한 별들/ 조용해져 내려다본다/ 서둘러 방문을 닫고 불을 껐지만// 어깨를 부딪힌 별들의 웃음소리…' ('웃음소리'에서). 강렬한 도시의 불빛, 신문 잡지 TV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각정보 속에서도 시인은 면벽하듯 성찰의 심연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또각또각/ 어둠을 깎는 구둣발자국/ …녹슨 지퍼를 열고 들어와/ 어긋난 숨소리 받아 적는 소리/ 글씨들 틈에 가늘게 누운 나/ 못생긴 목소리 하나 꺼내/ 머리 맡에 놓아둔다'와 같은 시어를 벼려낸다.
여덟 살 무렵 떠났던 고향 전남 완도는 그가 가진 강력한 문학적 자산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조차 청각적으로 환기된다. 시인은 여덟명의 아들딸을 위해 일흔 너머까지 물질을 했던 어머니의 숨비소리(해녀들이 잠수 후 가쁜 숨을 고르며 내는 휘파람 소리)를 떠올린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도시를 떠돌며 아파하는 자녀들을 위무하는 모성의 소리다. '무엇하러 불러왔을까 휘파람 한 봉지/ 어머니 베개 위에 포개눕던 달빛'('숨비소리2'에서).
도시적 감각에 기댄 강렬한 전위시들이 지배하는 요즘 시단에서, 서정의 미학을 신뢰하고 있는 김씨의 섬세한 마음결을 따라가 보는 것은 의미있다.
만추의 숲을 걸으며 시인은 '나뭇잎들 떨어지는 무게가 아프다/ …나무들은 나이테 속에서 봄을 숨긴 채 겨울을 건너왔다'고 노래하고, 폐지를 팔았지만 단팥빵 살 돈이 모자라 고민하는 어떤 할머니를 바라보며 '내려 놓지도/ 그렇다고 계산을 마칠 수도 없는 저 마음이/ 눈물 흘리는 모든 것들의 뒷모습 같다'고 쓴다.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씨는 "최근에 쓴 시일수록 서정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며 "도시라는 곳에서의 서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절실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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