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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18년 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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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18년 전을 기억한다

입력
2009.06.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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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진보언론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투까지 트집잡은 수구언론인들과 수준이 같았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탄핵요구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500만이 조문한 '민심'을 읽지 못하느냐고 당장 물러나라고 할 것이다. 수구가 아닌 범민주연대는 시민도 정치인도 수준이 다르다. 대통령한테 사과하고 재발을 막도록 수사체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최대치이다. 투표로 선출된 뜻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임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 정부와 수준이 같았다면 수구언론인들은 자리를 부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비리를 어떤 경로로든 캐서 입지가 곤란하게 했을 것이다. 비리가 없다면 미네르바 방식을 쓰면 됐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구언론과 입씨름을 하고 반론보도를 요청하고 언론중재위에 신청하는 합법적인 경로를 밟았을 뿐 불법적인 탈출구를 찾지 않았다. 검찰도 정보부도 정치사찰은 그만두었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도 언론사를 드나들던 안기부 직원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 자유에 힘입어 수구언론은 언론이라 부를 수도 없는 독설과 야유를 노무현 정부에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수구언론은 노무현 정부가 끝난 뒤에도 현재의 권력을 비판하지 않고 과거의 권력을 비난하는 데만 몰두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압박에도 민주주의 원칙지킨 노 정부

이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떠난 이의 죽음을 놓고도 독설과 비아냥을 계속한다. 그런 한편에는 현재의 권력을 더 비판했으면서도 검찰 수사와 당사자의 고백을 계기로 그도 비판했던 것이 죽음에 일조하지 않았나를 반성하는 지식인들이 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모트는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더 많이 다르다'고 했다지.

열하루동안 나 역시 괴로웠다. 아내 탓은 비루하다고 표현한 내 글이, 말은 다르게 했으면서 왜 그들처럼 살려고 했느냐고 라디오 방송에서 따지던 독설이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었나 거듭 생각했다. 왜 치욕과 수모를 이겨내지 못했나 고인에게 원망도 했다.

그러다가 1991년 생각이 났다. 함세웅 신부님이 신문사 돌아가는 상황을 이야기해달라고 사람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언론은 독립적인 것이므로 외부에 신문사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찰이나 안기부에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국민이 선출한 정부니까 민주화 도정에 돌입했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여전히 학생과 노동자들이 공안 당국의 강압수사를 피해 자살하거나, 바다에서 시체로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김지하씨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쓰고, 조선일보는 김씨의 변신을 빌미로 학생들의 분신이 운동권 조직의 사주에 의한 음험한 계략인 듯이 몰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숲을 보지 못했다.

죽음에야 민주 대 반민주의 숲을 봐

이번에도 그랬다. 이명박 정부를 꾸준히 비판해왔기에 이번 수뢰사건이 정부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노무현 개인을 비판해서 노무현적 가치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크게 보면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밟아버리고 국민들을 정권 마음대로 다루는 사회로 돌아가겠다는 검찰과 수구언론과 국세청과 청와대가 합작해서 일어난 사건인데, 숲을 보지 못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숲을 보았으니 고인은 이걸 일깨워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정부 이래 15년 동안 힘겹게 민주주의에 돌입했는데, 이명박 정부 이전 10년이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독재를 그리워한다. 북한을 위협적인 적으로 만들었고, 북한이 위협하니 국내에서 싸움은 하지 말자고 하고, 집회 시위 언론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련의 작업에 들어갔다. 자책과 낙담은 고인이 바라던 것이 아닐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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