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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20년 뒷걸음친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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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20년 뒷걸음친 KBS

입력
2009.06.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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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억울합니다." 요즘 빈번해진 시위 현장에서 흔히 듣는 낯익은 말이다. 시민들의 항의를 들은 전경의 입에서 나오는 볼멘 말이다. 현장을 온 몸으로 책임져야 하는 말단 전경의 볼멘 말엔 비웃음이나 비난이 아닌 서글픔으로 대할밖에 도리가 없다. 정말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일선 전경과 똑 같은 볼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취재 기자들이다. 현장에서 기자들은 자신들의 소속과 관련된 모든 증거물을 숨긴 채 취재하고 있다.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한 뉴미디어 기자들만 광고 삼아 자신을 드러내 알릴 뿐이다. 간혹 소속을 안 시민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보도에 항의라도 하면 "나도 억울합니다"라고 나직이 말을 뱉는다.

일선에 선 이들의 억울한 호소는 잘 먹히지 않는다. 억울하면 그만둬라는 야유성 권유, 소속 부대나 소속 언론사에 대한 모멸적 언사, 심지어는 빈 페트병까지, 온갖 것들이 억울한 목소리를 향해 날아든다. 날아드는 모든 것을 막고, 설득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흥분이나 분노를 늦추기엔 역부족이다.

'국민의 방송' KBS에 날아드는 것이 가장 많고, 거기 날아드는 모든 것은 신랄하기가 으뜸이다. 중계차를 에워싸고 떠나라는 말은 예사고, 기자들은 번번히 치도곤을 당한다.

한 현장에서 KBS 기자가 당하는 수모를 보곤 "앞으로 일 년은 마음병을 앓겠다"는 생각이 들어 측은감마저 일었다. 날아드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KBS는 일찌감치 현장을 포기하거나 멀리 떨어져 취재를 수행한다.

'국민의 방송' 혹은 '한국방송'이 되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 취재를 행하니 불만은 증폭된다. 악순환이다. 전경의 볼멘 목소리를 닮아가는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엔 자신도, 긍지도, 의욕도 없다.

가능한 접촉을 피하고, 현장을 멀리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경찰이 주는 정보가 주 정보원이 되고, 그것을 반복하고, 더더욱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과 비슷한 시선을 갖게 된다.

일선 기자들은 억울함과 상처를 호소하고 그것을 치유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이선의 취재 지휘부는 꼼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제대로 된 방송을 하고 있다면서 큰소리까지 마다않는다. 무전을 들으며 진압에 쾌재를 부르는 전경부대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기한다며 오히려 야유와 분노를 나무라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전경부대장에 물어 얻을 답은 뻔하다. 상부의 지시라고 말하면 그만 아닐까. KBS 사장이나 간부들의 입에선 어떤 답이 나올까. 지금 버티고 있는 고집을 비집고 집요하게 끈질기게 왜 이러냐고 물으면 사장과 간부들의 입에선 어떤 말이 나올까.

표준에 가까운 사람들이 뱉어내는 야유와 분노가 일부 인사들에 의한 선동이며, 편향된 의견일 뿐이라고 여전히 자신할까. 나날이 떨어지는 인기와 신뢰도를 보면서도 일시적 현상이라고 버티고 말까. 아니면 "나도 억울하다"며 '바지사장''바지간부'의 속내를 드러낼까.

KBS가 20년은 젊어졌다는 우스개 말들이 떠돈다. 젊어졌다니 좋은 말이라 오해하지 말자. 5공, 6공의 시절로 돌아갔다는 비아냥이므로. 대중과 유리된 채로 소가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봉하마을 뉴스를 전해야 하고, 중계차 뒤에 몸을 숨긴 채 날아드는 것을 피해야 하는 풍경이야말로 KBS 전 구성원이 억울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더 깊은 병이 들고, 더 무거운 것들이 날아들기 전에 시청자들에 정성을 다하고, 가깝게 다가갈 특단의 움직임을 취해야 할 때이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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