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은 다도(茶道)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이 만남은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므로, 차를 대접하는 주인과 손님 모두 정성을 다해 그 자리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려낸 차는 오직 그 때 그 자리에서 단 한 번의 고유한 맛과 향과 빛깔을 지닌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법정(77) 스님의 첫 법문집이 <일기일회> (문학의숲 발행)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스님의 상좌인 덕인, 길상사 주지 덕현, 덕진 스님과 시인 류시화씨가 함께 엮은 이 책은 2003년 5월8일 부처님오신날부터 지난 4월19일 서울 길상사 봄 정기법회까지의 법문 43편을 모은 것이다. 2003년 5월 이전의 법문은 속간될 문집 시리즈에 차례로 정리될 예정이다. 일기일회>
법문집 제목을 <일기일회> 로 한 것은 이 말에 스님의 법문을 관통하는 주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님의 법문은 명동성당에서 뉴욕의 맨해튼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원불교 대강당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았지만, 그 메시지는 대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에 모아졌다. 일기일회>
스님은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왔다.
불교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 생멸하여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무상의 바다 위에 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스님은 그 덧없음보다는, 그 덧없음 속에 꽃처럼 피어나는 찰나의 현상과 존재의 광휘를 찬탄해왔다. 존재는 무상하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무상의 역설'을 가르쳐온 셈이다.
법문집 곳곳엔 어떻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얘기가 스님 특유의 정갈하고 야무진 언어로 담겨져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에 굴복해 자살을 시도할 때 스님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며 스스로를 해친 자해의 업을 짊어지고 다음 생으로 건너가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49~54쪽)
또 불황과 경제위기로 모두가 불안해 할 때 스님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어려움을 모르게 되어 삶에서 영적인 깊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34~39쪽)
법문집의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제자들은 문집 서문에서 지난 겨울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스님을 문병했던 얘기를 전했다. 스님은 그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간을 무가치한 것, 헛된 것, 무의미한 것에 쓰는 것은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써야겠다고 순간순간 마음먹게 된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병 중에도 책의 원고를 꼼꼼히 읽고 직접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보완했다고 한다. 그런 스님에 대해 제자들은 "우리는 우리의 스승이 육체의 건강을 회복해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기를, 다시 여러 계절을 더 맑은 가르침으로 채워 주기를 바라며 이 법문집을 낸다"고 기원했다.
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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