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제일주의는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이었던 GM과 씨티그룹의 몰락이 던져준 교훈이다.
두 회사는 업종은 다르지만 몰락의 원인에선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양적 팽창에 몰입한 뒤 본업보다 부업에 치중했고, 경영진이 단기 수익에만 관심을 쏟았으며, 노조는 도덕적 해이에 빠졌고, 위기 대비 체계가 취약했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인수합병(M&A)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가 세계적인 경제 침체를 맞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팽창 또 팽창
GM과 씨티그룹은 둘 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계속된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업보다 부업에 몰두하면서 몰락의 씨앗은 잉태됐다.
GM의 경우는 GMAC이라는 금융부문 자회사를 크게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1919년 설립돼 오랫동안 자동차 할부금융업을 해 오던 이 회사는 1998년부터 M&A를 통해 모기지 사업에 진출했다.
자동차회사가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지만, 돈이 됐기 때문에 사내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2004년 GM의 총이익 360억달러 중 80%(290억달러)가 GMAC을 통해 창출됐을 만큼, GMAC은 모회사를 먹여 살리는 '효자'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GM은 자동차도 만드는 은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06년부터 GMAC은 순손실을 내기 시작했고 지난해 금융위기를 거치며 파산 직전에 이르러, 안 그래도 휘청거리던 GM이 쓰러지도록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씨티그룹은 은행업이 안정적이지만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하던 10년 전 법을 바꾸면서까지 증권사와 합치며 자산을 세계 최대 규모로 늘렸다. 이후 본업인 은행업보다 천문학적 수익을 안겨 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등 고위험 자산투자에 매진하다 역시 금융위기를 거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경영진의 근시안
두 회사의 경영진은 회사의 장기적 비전보다는 눈 앞의 이익만 추구했다. GM을 비롯한 미국 자동차3사는 소형차 판매를 늘린 일본이나 한국회사들과 달리, 지속적으로 SUV나 픽업트럭 생산에 주력했다. 지난해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미국 내 판매대수 중 라이트 트럭(승용차를 제외한 SUV, 픽업 등 모든 차종) 판매 비중은 57.8%, 64.9% 72.1%에 달한 반면 도요타, 혼다, 닛산의 라이트 트럭 비중은 38.7%, 38.7% 37.6%에 그쳤다.
대형차종이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 여기저기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대형차 위주 포트폴리오를 경고하고 나섰지만, 경영진들은 귀를 막았다. 박종석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형차는 대당 2,400달러의 이익을 올리는 반면 대형 픽업은 대당 5,200달러, 럭셔리 SUV는 1만2,600달러를 벌어들인다"면서 "큰 차일수록 당장 수익이 많이 남는다는 점 때문에 미국자동차 회사들은 대형차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미래를 대비한 투자를 하기보다 단기 수익에 집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씨티그룹도 안정적이지만 수익성은 떨어지는 은행업보다는 기하급수적 수익을 안겨 주는 투자은행(IB)업에 집중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부도 위험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산에 손을 댄 것도 단기수익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성과 위주 보상 체계가 기업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으로 인식돼 왔지만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 위기를 통해 깨닫고 있다.
위험관리 시스템의 부재
GM과 씨티그룹은 이미 속으로 곪고 있었다. 금융위기 때문에 한꺼번에 터졌을 뿐,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 환부였다. 구조조정 타이밍을 실기(失機)함으로써 연착륙에 실패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실장은 정부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문제가 있을 때 이를 바로 진단하고 시정하는 시스템이 개별 회사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면서 "GM과 씨티그룹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국유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금융 부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감독과 규제가 작동하지 못했으므로 이를 강화할 필요가 있고, 실물 부문에서는 미국도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구조조정은 시장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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