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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말(馬)처럼 날뛰는 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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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말(馬)처럼 날뛰는 말(言)

입력
2009.06.0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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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 아프게 반성한다."

진보진영의 '독설가'로 유명해진 진중권씨가 최근 이른바 '자살세 발언'에 대해 5년 만에 공개 사과했다. 그는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투신하자 "자살세를 거뒀으면 좋겠다. 시체 치우는 것 짜증나지 않느냐"고 냉소했다. 또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투신한 후엔 "검찰에서 더 캐물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겠다는 넘들이 있다고 한다. 검찰은 청산가리를 준비해 놓고, 원하는 넘은 얼마든지 셀프서비스하라고 해라"고 빈정거렸다.

진씨의 뒤늦은 반성을 대하면서, 최근의 사회적 담론을 오염시킨 '나쁜 말'들의 독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 중 국민을 더욱 괴롭히고, 사람들의 의식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선을 넘은' 말들의 얘기다.

지만원씨는 고인의 죽음을 "패가망신의 도피처로 자살을 택한 것"이라며 고인을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변희재씨는 "자신의 측근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조폭의 보스나 다름없는 사고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갑제씨는 처음에 전 언론이 고인의 죽음을 '서거'로 표기하자 '자살'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가, 나중엔 "자살에 의한 추락사일 가능성은 높지만 실족에 의한 추락사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애써 고인의 죽음을 폄훼하려고 했다.

이런 말들은 호불호를 떠나 한 인간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에 순수하게 옷깃을 여민 대다수 국민의 정서에 오물을 뿌렸다. 모두 무례하고, 무도하고, 비겁하고, 교묘한 말들이다.

공연히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할퀴고 물어뜯는 말들도 난무했다.

변씨는 국민장을 "당신들만의 축제, 당신들만의 투쟁이라면 당신들의 돈으로 진행하라"고 했다. 지씨는 장례에 참석한 면면을 두고 "역대 빨갱이들이 줄줄이 나와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까불어댄다"고 했다. 격해진 감정 때문이었겠지만, 명계남씨는 "국민이 죽여놓고 무슨 국민장을 하느냐"며 "우리 힘으로 노 전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당신들', '빨갱이', '우리' 같은 말이 얼마나 무참하고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인지 깊이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마'자도 모르고 그저 공짜로 논 주고 밭 준다는 말에 도장 한 번 잘 못 찍었다가 '빨갱이'로 분류돼 허망하게 스러진 30만 보도연맹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또 노무현 정부에 표를 몰아주고도 일부의 '우리'라는 파당의식 때문에 소외된 다수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사과할 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사는 게 각박해서 그런지 인터넷 때문인지, 말(言)들이 광기 들린 말(馬)처럼 날뛴다. 사회적으로 널리 유통되는 공인의 말들이 날뛰니, 대중의 말은 물론이고 어린이들의 말까지 점점 험하고 거칠어진다. 예의나 범절까지는 잘 모르지만, 끝없이 추락한 말의 매너 만큼은 최소한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수준으로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도 재임 때 수많은 설화를 일으켰다. 당시 '저 분이 어떤 업적을 남길 지는 모르지만, 그 말로써 우리 사회의 말의 풍토를 흐린 해악을 벌충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고인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유언을 남겼다. 엉뚱하지만, 필자는 그 대목을 생전의 수많은 거친 말씀에 대한 고인의 흔쾌한 사과로 받아들인다.

장인철 문화부 차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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