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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장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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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장례는 끝났다

입력
2009.06.0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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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상처 받지 않은 국민이 있을까. 그를 좋아했던 사람이나 싫어했던 사람 모두가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번에 드러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여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고집이 세고, 때로는 거친 궤변으로 자신을 옹호하면서 코뿔소 같은 이미지를 굳혔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시련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경악했다.

강한 노무현, 여린 노무현

'강한 노무현'을 상대로 힘을 다해 공격하던 사람들은 그가 어이없이 쓰러지자 같이 나가떨어진 형국이 됐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판사와 변호사를 지낸 전직 대통령이 유능한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나가려 한다고 판단한 검찰은 피의사실과 조사과정의 얘기를 흘리면서 여론으로 그를 제압하려는 유혹에 빠졌다. 검찰은 그를 과대평가하면서 감정적으로 과잉 대응한 부분이 있다.

알고 보니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치욕보다 죽음을 택할 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결벽증이 있고,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당황하고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도 단순한 '막말'이 아니라 '비명'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받은 충격과 상처는 오죽했을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만 인파와 그들이 남긴 추모의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당신을 돕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당신의 꿈을 잊지 않겠습니다.… 노무현과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는 사랑이 있었고,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이 있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혜성처럼 나타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홀린 것처럼 '노무현의 꿈'에 투표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 5년 동안 실망하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사랑 받는 대통령도, 인기 있는 대통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충격적인 죽음은 7년 전 대선에서의 열망을 되살려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꿈, 더 멀어진 꿈을 아쉬워하며 '함께 꿈꾸던 사람'을 그리워했다. 대통령을 지냈으면서도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자살은 수많은 서민들의 가슴을 찢었다.

'장례 후 폭풍'은 순수하지 못하다. 그의 죽음에서 덕을 보거나 그의 죽음을 계기로 소리를 높이려는 계산이 두드러진다. 장례를 치른 후 지지율 상승에 고무된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수사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6월 항쟁 계승 및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 참가하여 장외투쟁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정당인지 운동단체인지 헷갈릴 뿐 아니라 언제 그렇게 노무현을 존경하고 사랑했었는지 보는 사람들의 낯이 간지럽다.

검찰이 노 전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갔다는 정치공세 속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두 번째 사표를 냈는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검찰총장이 스스로 물러난 것은 직업적인 자살이다. 검찰의 업무 중에는 이번 경우와 같은 불상사와 그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압력, 인간적인 고뇌 등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포함돼 있다. 그것이 '칼'을 쥔 직업의 숙명인데, 총장이 못 이겨내면 후배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이번에 검찰의 사기가 꺾이면 권력층 부패 추방 의지는 저 멀리 후퇴할 것이다.

대통령 담화 적극 검토를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고, 또 북한의 위협에 불안해 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국민을 위로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다짐하는 담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경제회복이 중요하다"는 판에 박힌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딱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장례에서 드러난 서민들의 상처와 상실감을 잘 헤아려야 한다.

장례는 끝났다. 권력형 비리를 반드시 뿌리뽑아서 대한민국이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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